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국제 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 등 새 정부 외교 노선에 일부 우려가 있는 국가들을 안심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주한 미국 대사대리 출신으로 미국 내 대표적 ‘지한파’로 꼽히는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수석부차관보는 11일(현지시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실용 외교’의 의미가 아직은 불분명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최우선시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보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그는 미국이 6ㆍ25전쟁 때 대한민국 주권 수호를 위해 싸운 반면 중국은 한국을 공격한 마지막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은 중국이 아닌 미국 편에 있다는 점을 미ㆍ중 모두 이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최근 미 백악관이 한국 대선 결과와 관련된 질의에 뜬금없이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우려한다’는 입장을 낸 데 대해 “부적절했다”면서도 “워싱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이재명 정부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노선 차이 중 하나가 ‘중국에 대한 시각차’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초기 단계에서 미국에 중국과 대만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또 “G7 회의를 계기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더욱 강력한 한ㆍ미 파트너십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양국 동맹이 미국 이익에 더 부합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중앙일보는 본격적인 외교 무대 데뷔를 앞둔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조언을 듣기 위해 미 국무부에서 30년 넘게 일한 베테랑 외교관 출신으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리비어 전 부차관보를 서면 인터뷰했다.

“G7, 이 대통령 외교비전 제시 기회”
G7 회의에 초청된 이 대통령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은 뭔가.
“G7 회원국이 아니라 초청국 자격이라는 점을 감안해 5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①동맹국 정상들과 친분을 쌓고 개인적 유대 관계를 구축하는 것 ②한국이 G7의 우선순위를 공유한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것 ③G7 회원국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④이재명 정부의 외교정책, 국가안보, 경제ㆍ무역정책의 비전을 전달하는 것 ⑤미국ㆍ일본 정상과의 회담에서 핵심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돌발적 상황을 피하겠다는 결의를 재확인하는 것 등이다.”
이 대통령이 추구하는 ‘실용 외교’는 G7이라는 다자외교 무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실용 외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거 정부 외교와 어떻게 다른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G7 회의는 이 대통령에게 자신의 외교 목표와 우선순위를 설명하는 최적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 등 한국 정부의 미래 방향에 대해 우려하는 국가들을 안심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 만반의 준비 보여야”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한ㆍ미동맹은 어떻게 작용할 것으로 보나.
“미국에서는 이 대통령이 대선 때 득표 전략상 중도ㆍ보수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한ㆍ미동맹 강화론을 폈을 수 있고 정부 여당이 과거의 신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대미 관계에서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려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미국과의 동맹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최근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외교를 경계하라고 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양국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자 하는 이 대통령에 조언을 한다면.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북한과 중국에 맞서 대한민국의 주권과 독립을 지켜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갇혀 있는’ 게 아니다(The ROK is not ‘caught between’ the US and China).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잘 안다. 만약 한국의 새 정부가 이에 동의하지 않고 한국이 미국과 한국을 침공한 마지막 국가인 중국 사이에서 갇혀 있다고 믿는다면, 이는 한미 동맹이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신호이다. 한국이 미국과 강력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민주주의, 자유, 자유롭고 개방된 무역, 인권에 대한 원칙을 지킨다고 해서, 동시에 중국과의 적절한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이 대통령 당선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백악관이 ‘중국 영향력 우려’라는 이례적 반응을 냈다.
“이 대통령 경쟁 후보는 대선 결과에 신속하게 승복했고 중국 개입 의혹을 전혀 제기하지 않았다. 백악관의 성명은 부적절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선거 개입 의혹을 제기해 온 극단주의자와 음모론자들에 동의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주한미군 규모·역할 변화 가능성 커”

주한미군과 관련해 ‘4500명 감축 및 재배치설’이 나왔고 ‘전략적 유연성 확대’ 논의가 미국에서 활발한데,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미국 내 전략적 유연성,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군 재배치 및 안보 우선순위 재조정, 동맹국에 대한 추가 부담 요구 등 관련 발언들의 행간 의미를 분석해 볼 때 주한미군의 규모ㆍ역할ㆍ임무에 일부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미군의 구조ㆍ역할ㆍ임무와 관련해 워싱턴과 조용히 협의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대북 전략과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양측 모두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충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완전한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동의한다면, 비핵화는 더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북한은 의제 설정 과정에서 ▶미국의 북한 핵 지위 인정 ▶군축 및 한반도 주변 지역 미군 자산의 감축 등이 테이블 위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미국이 이를 수용할 의향이 있다면, 이는 한국과 심각한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
☞에반스 리비어
미국 국무부에서 1976년부터 30여 년간 일한 베테랑 외교관 출신 인사. 주한 미국대사관,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한국어ㆍ일본어에 능통하며 대북 협상에도 관여하는 등 국무부 출신 인사 중 최고의 동아시아통(通)으로 꼽힌다. 2004~2005년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로 있을 당시 한반도와 동아시아 외교를 실질적으로 관리했다. 외교관 퇴임 이후에도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등에서 활발하게 연구ㆍ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