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스기보다 무서운 네트워크 전쟁…미·중이 바꾸는 전쟁의 룰 [박수찬의 軍]

2025-09-12

인도태평양 지역 제공권을 장악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우수한 전투기를 갖고 있는가를 놓고 경쟁하던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군사전략과 기술 등의 분야로 경쟁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미국은 첨단 스텔스기와 네트워크 능력을 활용해 기존보다 높은 타격력을 확보하는 분산 협력 항공작전(DCAO) 개념을 앞세울 태세다.

중국이 미사일과 항공모함 등을 동원해 특정 작전 지역 접근을 차단하고 해당 지역에서의 활동을 거부하는 군사전략인 반접근·지역거부(A2AD)을 내세우는 것에 대한 맞대응 카드다.

중국은 미군의 지휘통제체계를 뒤흔들어 네트워크를 교란·공격할 수 있는 전자전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군의 진정한 힘이 실시간 네트워크를 토대로 하는 정보공유에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미·중 양국이 단순한 무력 과시를 넘어 비대칭 수단을 활용해 제공권을 확보하는 실질적인 능력을 가지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위협에 맞서는 미국

냉전 시절부터 1990년대까지 미 공군은 전투기 수십 대를 한꺼번에 투입해서 적군을 폭격, 무력화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걸프전과 코소보 전쟁,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이같은 방식은 적군의 지휘망과 공군력을 일거에 무력화해 미국이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중국이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앞세워 방공망과 조기경보 능력, 해상 공격능력 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 기존 방식은 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규모 부대를 구성해서 중국 연안에 접근할 경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부대원의 생존성과 임무 성공률은 그만큼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 공군과 해군은 다수의 소규모 전력을 넓은 지역에 분산한 뒤, 고도로 발달한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 연결하는 방식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전장 곳곳에 소규모로 분산된 전력을 네트워크로 묶어서 단일 부대처럼 운용하는 개념이다.

전투기와 무인기, 정보·전자전 체계 등이 실시간 정보공유가 가능한 네트워크를 토대로 협업해서 임무를 수행한다.

중앙집권식 지휘체계 대신 분산 통제 방식을 채택해 지휘부와 단절된 상황에서도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분산 협력 항공작전은 적군의 레이더와 방공망 회피 가능성을 높여 생존성을 증대하는 효과가 있다.

부대 규모가 작으므로 작전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유연성이 높다. 네트워크 협력으로 적군의 움직임이나 기상 변화 등에 따른 실시간 목표 재분배가 가능하다. 기존 방식보다 더욱 민첩하면서도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이같은 형태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제한적으로나마 구현됐다. 러시아의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 공군은 러시아군 공격을 피해 전투기들을 소규모로 분산시켰다. 이후 서방의 도움을 받아 네트워크를 사용해 협력하며 지상 표적을 타격했다.

미군도 다양한 공중훈련을 통해 관련 개념을 시험해왔다.

미 공군과 해군에 배치되고 있는 F-35 스텔스 전투기는 이 같은 방식을 더욱 수월하게 적용하는 기반이 된다.

곤충 크기 수준의 레이더 신호 정도만 반사해 적 레이더에 탐지될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와 전자 광학 표적 체계(EOTS), 전자전 경보 수신기(RWR) 등 최신 전자장비들이 수집한 정보가 중앙 컴퓨터에 의해 융합·분석돼 조종사에게 제공된다.

미군의 감시정찰자산이 수집한 정보가 고속·고용량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 공유되는 것까지 더해지면 조종사의 상황인식능력은 과거보다 크게 높아진다.

현재 미 공군은 F-35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지닌 6세대 스텔스 전투기 F-47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F-35보다 더욱 위력적인 성능을 발휘할 F-47이 등장하면, 네트워크와 정보 융합에 의한 분산 작전은 한층 맹위를 떨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다만 리스크도 존재한다. 젋은 전장에 소규모로 분산된 전력을 동시에 운용하려면 지휘체계가 매우 복잡해질 수 있다.

지휘통제체계에 과부하가 발생하거나, 프로토콜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거나, 사전에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는 실행에 문제가 생긴다. 다국적 연합공중작전에선 이같은 문제가 더욱 두드러진다.

사전에 충분한 숫자와 규모의 거점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활주로와 연료·무장 보급 체계 등을 갖춘 공항이나 공군기지를 미리 만들어야 한다.

◆전자전에 투자하는 중국

미군의 분산협력 항공작전은 안정적인 지휘통신·네트워크 체계가 필수다.

통신망이 끊어지거나 속도가 느려지면 각지에 흩어진 소규모 부대들이 동시에 움직이기가 어려워지므로, 위력도 크게 낮아진다. 전파교란이나 사이버 공격 등의 전자전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중국은 이 같은 ‘빈틈’을 노리는 모양새다. 전자전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 미군을 교란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일 베이징 텐안먼 광장에서 진행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선 각종 미사일과 더불어 중국군의 전자전·통신 장비가 이례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도 했다. 미군을 상대로 전자전을 감행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전자전 능력은 미군의 작전을 위협할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2022년 중국 군사력 관련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이 전자전, 사이버전, 우주영역대응 능력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전략적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국방정보국(DIA)도 “중국군이 통신·레이더·위성항법 지원을 차단하거나 방해하기 위한 전자전을 훈련에 포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중국군은 중국산 중형 수송기 Y-8을 전자전 용도로 개조한 Y-8 ECM을 운용중이다. 기체에 대규모 전자전 장비를 탑재한 형태로서, 기체 하부에 코 모양의 구조물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적 통신망과 레이더를 대규모로 마비시킬 수 있다.

지난 2021년 주하이 에어쇼에서 공개된 J-16D 전자전기는 미 해군 항공대에서 쓰는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와 유사하다. 전파방해 장비와 전자공격 기능을 갖춰 적 방공망을 제압할 수 있다.

중국이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 머신러닝 등의 기술을 활용해 복합적인 전자전 능력을 확장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6월 중국 연구진이 6G 기술을 활용한 전자전 시스템을 개발했다 보도했다. 현재는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F-35 레이더를 겨냥해 3600여 개의 허상을 생성할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중국에선 아군의 전자체계는 손상을 입히지 않고 적군에게만 전자공격을 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다만 해당 기술은 시뮬레이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출력 마이크로파를 방출해서 드론과 미사일, 항공기 내부 회로를 무력화하는 기술도 연구되는 모양새다.

중국은 현재 항공기 기반의 전자전 체계와 더불어 지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자전 능력을 함께 구축하고 있다.

차세대 정보통신 기술와 AI를 활용한 지능형 전자전 체계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다양한 영역에서 전자전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높이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첨단 기술을 토대로 전자전 역량을 강화할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 공군과 해군의 네트워크 기반 항공작전에 상당한 위협을 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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