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봄 권병직(84), 박정자(84)씨 부부가 손님을 맞았다. 문간방의 새 임자였다. 검사라고 했다. 그 직책이 갖는 위압감에 움츠러든 부부에게 그 검사 하숙생이 꾸벅 절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윤석열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대구지검에 갓 부임한 34세의 윤석열 초임 검사였다. 그는 시종 예의 발랐고 깍듯했다. 그를 먹이고 재운 2년간 그들 부부는 그의 팬이 됐다.
예의 발랐던 ‘인간 윤석열’
수사력·정의감도 충만 평가
차라리 검사로 남았더라면
“출근길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빠뜨린 적이 없었어요. 보태는 것도 빼는 것도 없이 인간으로서의 덕목은 거의 다 갖춘 사람이었어요. 성격, 인성 좋고 예의도 바르며 원만했어요. 식탁 테이블 빙빙 돌리는 고급 식당에서 음식도 대접받았어요. 그런 곳은 생전 처음 가봤죠.”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는 날. “우리 내외가 너무 섭섭해서 이삿짐 싣는 거를 내다보는데 윤 검사가 ‘선생님 잠깐만 앉으세요’ 이러는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큰절을 넙죽 하는 거야.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하면서. 그런 하숙생이 어디 있노. 감동했죠.”
2022년 2월 28일 자 매일신문 기사를 재구성해본 내용이다. 선뜻 믿기지 않는가. 어느덧 불통과 무례의 대명사가 돼버린 윤 대통령이 그렇게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는 게. 하지만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유료 구독 서비스인 더중앙플러스 연재물 ‘윤석열 vs 한동훈’ 집필을 위해 여러 취재원을 만나고 옛 자료들에서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그의 예의 바름에 대한 증언과 기록은 숱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강릉지청 시절의 이 일화는 어떤가. “회식할 때 윗분이 취해서 식당 종업원을 험하게 대한 적이 있었어요. 윤 검사가 그 종업원을 몰래 밖으로 불러내더라고요. 그러고는 2만원을 쥐여 주면서 ‘미안해요. 그래도 높은 분이니 잘 모셔 주세요’라고 다독였어요. 그런 인정이 있었던 사람이었어요.”(전직 검사 A)
연하의 선배 검사들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길래 술자리에서 ‘앞으로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선배신데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어요.”(전직 검사 B)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의 저서(『변양호, 신드롬』)에는 그가 구속영장 발부로 무너져내릴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그를 위로한 검사가 등장한다. “동일 사건 피의자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미 발부됐기 때문에 법원 입장에서는 (영장 발부가) 불가피했을 겁니다. 앞으로 호흡을 길게 하시고 주변에 있는 훌륭한 변호사들과 어려움을 헤쳐 가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변 전 국장은 3년 전 더중앙플러스와 만난 자리에서 “그 검사는 윤 대통령이었다”고 밝혔다.
수사력은 어땠을까. 초임지 대구지검에서부터 검사 중 직구속(불구속 송치된 피의자를 검찰이 추가 수사해 구속하는 것) 건수 1위였고, 광주지검 특수부 시절 그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교본 삼아 공부하고 싶어한 검사가 있었을 정도다. 정의감?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의 결기, 살아있는 권력에 정면으로 맞섰던 검찰총장의 면모를 상기하는 것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 이 판국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다소 민망하지만 기자가 예전에 작성한 칼럼 일부를 재인용해본다.
“지금이라도 그가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면 좋겠다. ‘완벽한 정치적 독립성을 보여준 최초의 검찰총장’ 상(像)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정치인으로의 변신이 그 가치를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검사 윤석열과 달리 정치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아직 지지해야 할 확실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더욱 아쉽다.”(중앙일보 2021년 3월 10일자 29면 ‘분수대’)
인정 많고 예의 바르며 수사 잘하고, 권력에 굴하지 않던 검사 윤석열로 그쳤다면, 오랫동안 청사에 그 이름을 남겼을 거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4년간 그를 수식한 건 불통·비호·막말·무례·강압·말술 등 부정적 단어뿐이었다. 급기야는 요령부득한 비상계엄으로 한 가닥 만회의 희망마저 날려버렸다.
“이제 우리나라는 정치만 좀 잘하면 됩니다. 윤 검사가 법과 원칙대로 잘해서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
서두의 하숙집 부부가 대선 후보 시절의 윤 대통령에게 남긴 바람이다. 그를 뽑았던 모두의 염원도 다르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결과가 너무나도 참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