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레 중흥기의 초석을 놓은 해외 진출 1~3세대 대표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 서울시발레단의 마지막 작품인 ‘한스 판 마넨 × 허용순’을 통해서다.

서울시발레단은 오는 30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네달란드 출신 발레계의 거장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와 허용순의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Under The Trees' Voices)를 더블 빌로 선보인다. 더블 빌은 두 개의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는 방식이다.
22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를 안무한 허용순(61)과 ‘캄머발레’의 지도자 및 출연자 김지영(47),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에 출연하는 강효정(40) 등이 참석했다.

해외 진출 1세대 무용가로 꼽히는 허용순은 1980년대 독일에 진출해 스위스스위스 취리히발레단 및 바젤 발레단, 독일 뒤셀도르프 발레단 솔리스트를 거쳤다. 2001년부터 안무가로 활약하며 세계 주요 무용단에서 52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현재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에서 리허설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김지영은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졸업한 뒤 1997년 최연소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 수석 무용수로 활약했다. 강효정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빈 국립 발레단 수석을 거쳐 이번 시즌부터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다.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는 독일을 거점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 중인 안무가 허용순의 최신작이다. 이탈리아의 작곡자이자 지휘자 에지오 보쏘(1971~2020)를 향한 헌정 작품이다. 에지오 보쏘의 교향곡을 활용해 만들었다. 허용순은 “에지오 보쏘는 제 안무에 큰 영향을 준 음악가”라며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음악과 인생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언더 더 트리즈 보이시즈’에 출연하는 강효정은 “한국에서 컨템퍼러리 전막 발레를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서울시발레단과 함께 허용순 선생님의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전했다. 서울시발레단 시즌무용수 이유범이 에지오 보쏘 역을 맡았다. 그는 “에지오 보쏘의 모습을 어떻게 저만의 해석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캄머발레’는 한정된 공간에서 무용수의 정교한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캄머’(Kammer)는 독일어로 ‘작은 방’이라는 뜻이다. 지난해 서울시발레단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연했고, 올해 다시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 출연한 김지영 무용수가 올해는 지도자겸 출연자로 참여한다.
김지영은 “지도자 역할을 하며 한스 판 마넨의 작품에 대해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게 됐다”라며 “지난해 공연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작품에 출연하는 서울시발레단 시즌 무용수 남윤승은 “지난해 한스 판 마넨 작품을 준비하다 부상을 당해 출연하지 못했는데, 캄머발레로 무대에 오를 수 있어 기쁘다”라고 했다.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무용수들의 입지가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허용순은 “무용수로 활동하는 동안 한국인을 보기 어려웠다”라며 “지금은 세계 유수의 모든 무용단이 한국 무용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은 “훌륭한 한국 무용수들이 많이 배출된 만큼 체계적인 지원 체계를 갖춰 한국 발레계가 멈추지 않고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