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연방의회에서 전자기기 사용과 정치적 메시지 표출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율리아 클뢰크너 연방의회 의장이 본회의장에서 노트북과 태블릿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기기에 스티커나 문구 부착을 금지하면서 진보 진영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13일(현지시간) 독일 주간지 차이트 등에 따르면 클뢰크너 의장은 지난 9일 전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스티커나 메시지가 부착된 기기 사용은 명확히 금지된다”며 “노트북과 태블릿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만 눈에 띄지 않게, 회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게 써 달라”고 경고했다. 특히 앞줄에 앉은 의원들에게는 “회의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유념하라”고 당부했다.
클뢰크너 의장의 지침은 단순한 안내 수준을 넘어 실제 적용으로 이어졌다. 지난달에는 녹색당 의원이 ‘팔레스타인’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즉각 퇴장을 명령했고 같은 날 이스라엘 지지를 외친 방청객 역시 제지했다.
또 지난 7월 베를린 퀴어축제 기간에는 성소수자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의회 건물에 게양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는 진보 성향 ‘신호등 연정’ 시절 이어져 온 관행을 중단시킨 조치였다.
잇따른 규제에 진보 진영에서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5월까지 경제장관을 지낸 로베르트 하베크는 “클뢰크너는 항상 양극화와 분열을 부추겨 왔다”며 의장직에 부적합하다고 직격했다. 이에 클뢰크너는 “야당이 된 경험을 나도 안다. 품위를 갖고 건설적으로 견뎌내라”고 반박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스티커를 붙이던 의원들이 과연 기기에서 스티커를 뗄지, 아니면 클뢰크너의 서한이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의 불씨가 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