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에 올해 9월 초에 불이 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고 불은 두 시간 정도 지나서 완전히 꺼졌다고 한다. 구룡마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925년이라고 하니 역사가 100년이나 된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당시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살던 곳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구룡산 자락에 무허가 건물을 짓고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구룡마을은 서울 최대의 판자촌 중 한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2025년 SH공사에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재개발을 거쳐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나는 강남에서 중학교에 다녔는데 우리 반에 구룡마을 아이가 있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니까 태경이라고 하겠다. 태경이는 만화가 이현세 화백이 그린 ‘까치’ 같은 더벅머리에 눈이 크고 순한 아이였다. 태경이는 학교에 잘 오지 않았다. 당시에는 종이로 된 학급일지라는 것이 있었고, 내가 우리 반 서기였다. 학급일지에는 서기가 매일 그날 지각하거나 결석한 사람 이름을 적게 되어 있었다. 한 달 넘게 매일 태경이 이름을 학급일지의 ‘결석’란에 적으면서 나는 진심으로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학급일지 앞부분에 결석을 40일 이상 하는 학생은 유급 처리된다는 방침이 적혀 있었는데 태경이 결석일수가 40일에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수업이 끝나고 서기가 학급일지를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결재 도장을 받았다. 나는 그 결재를 받으면서 담임 선생님께 이러다 태경이 유급하면 어떡하냐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반장이 태경이네 집에 찾아갔다. 반장은 남자아이였는데 태경이 아버지에게 쫓겨서 태경이는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태경이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태경이 교과서를 찢어버리거나 일해서 돈 벌어오라며 때려서 태경이가 학교에 못 오는 것이라고 반장이 말했다. 태경이가 학교에 계속 못 오니까 담임 선생님도 태경이네를 찾아갔다. 선생님은 부산에서 서울로 전근을 오신 경상도 남자분이었다. 함께 갔던 반장 말에 따르면 선생님이 태경이네 아버지를 야단쳤고, 태경이 아버지는 술 취해서 욕을 했고, 선생님도 지지 않고 화를 냈고, 태경이 아버지가 주먹을 쥐고 선생님에게 덤벼들었다고 한다. 반장은 싸움을 말리려다 태경이 아버지한테 맞았다. 담임 선생님이 많이 참아서 큰 싸움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1990년대 강남 8학군 부자 동네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나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다 충격이었다. 자식을, 그것도 아들자식을 학교에 안 보내려는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까지만 의무교육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중학생 아들을 학교에 안 보내도 담임 선생님이 어쩔 도리가 없다는 현실도 충격이었다. 아버지가 술 마시고 때리고 학교에 안 보내도 태경이를 보호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태경이는 결국 유급을 했고, 이어서 휴학을 했다. 중학교를 휴학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를 포함해서 태경이와 같은 반인 아이들은 그때 대치동 학원에 다니며 외국어고와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상당히 일그러진 생활이었으며 절대로 행복한 과정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뒤에 나는 시내버스에서 우연히 그때의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다. 가장 먼저 태경이 소식을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태경이가 복학해서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에도 진학했다고 무척 기뻐하며 알려주셨다. 태경이 아버지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강남, 대치동, “4세 고시”와 “7세 고시” 같은 보도를 구룡마을 재개발 소식과 함께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술 마시고 자식을 때리거나 학교에 못 가게 하는 것만 학대는 아니다. 아동을 학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 사회는 아동학대에 무관심하거나, 관대하거나, 어떤 측면에서는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아동학대를 권유하고 고무한다. 입시제도와 사교육 시장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행복하고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경험한 어른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어린 시절이 어떤 것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이다.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도. 그러니까 한국 사회가 불행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