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R&D로 끝나는 기상장비…“국내 관측망 핵심장비 외산 70%”

2025-10-15

국내 기상장비 연구개발(R&D)에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상용화가 지지부진하다. 외산 장비의 국내 관측망 점유율이 70%를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상예보 정확도는 국민 안전과 연관성이 큰 만큼 한국의 특성을 살린 국산장비 기반 재해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상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현재(9월 기준)까지 총 80건의 기상장비 연구개발(R&D) 과제 수행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 결과로 상용화된 장비는 28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부터 예산 247억원을 투입해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10개 중 6~7개는 연구실에 남고 현장 활용이 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기상레이더, 강수량계, 바람관측장비 등 국내 관측망에 쓰이는 핵심 장비 부문은 문게가 더욱 심각하다. 70% 이상이 독일·중국·미국산이며, 관측 정확도에 직접 영향을 주는 X밴드 이중편파 레이더는 50억원이 넘는 고가 장비임에도 국산화율 0%다.

상용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문제는 실증 예산 부족이다. 장비의 완성도를 검증할 예산이 없으니, 기술이 개발되어도 책상 위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것. 기상장비 기술성숙도(TRL)는 7단계까지 개발비로 채워진다. 이후 TRL 8~9단계, 즉 시범운영·성능검증·양산단계로 가기 위한 예산은 사실상 없다. 작년 기준 기상청 R&D 총예산 885억원 중 기상관측장비 핵심기술 개발 예산은 0.5%에 불과한 4억원에 그쳤다.

마땅한 품질보증 절차도 없다. 형식승인 대상 장비는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 R&D 장비는 객관적인 검증기관조차 없다. 공공관측망에 쓰이려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수인데, 품질보증 체계가 없다 보니 '국산 장비는 불안하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연구자는 개발하지만, 기상청은 외산을 쓰며, 국산화한 기술은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R&D와 사업화 사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R&D 단계부터 사업화를 전제로 한 전주기 로드맵을 구축하고, R&D와 실증, 실증과 조달, 조달과 수요를 잇는 사다리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홍배 의원은 “기상장비 R&D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기술은 쌓이지만 산업은 사라질 것”이라면서 “R&D가 논문으로만 남고 기술이 시장을 만나지 못하면 다음 세대의 연구 예산도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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