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혀 깨물었다가 옥살이…"최말자씨, 힙하다" 법정 밖 변호사의 기록 [김수호의 리캐스트]

2025-11-30

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

“피해자를 위한 변호사로 살아간다는 것” 서혜진(44)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저서 ‘법정 밖의 이름들’ 첫 문장이다. 법정 안팎에서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는 서 변호사는 연출가 이윤택 성추행 사건,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고(故) 박원순 성폭력 사건, 텔레그램 N번방 등 굵직한 사건마다 피해자 곁에 섰다.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씨 재심이 열리도록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난 8월 서혜진 변호사는 범죄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법정 밖의 이름들'을 펴냈다. 젠더폭력, 아동학대 피해 사례부터 법과 제도의 허점까지 낱낱이 담겼다. 그는 “범죄 피해자들이 형사 절차에서 배제된 역사가 길었다”며 “그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감정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피해자가 찾는 변호사, 피해자를 찾는 변호사

“형법 교과서에서 봤던 '혀 절단 사건' 속 18세 소녀가 호랑이가 되어 나타난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최말자', 이름도 힙하지 않나요?”

책에 나오는 '이름들'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있다. '강제키스 혀 절단 사건' 당사자 최말자(79)씨다. 1964년 5월 6일 당시 18세였던 최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에 저항하다 그의 혀를 깨물어 1.5㎝ 절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6개월간 구금 끝에 이듬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최씨는 56년 만인 지난 2020년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한국여성의전화 전문위원이었던 서 변호사는 해당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범잡2'에 최씨 사건을 소개하는 등 '56년 만의 미투'에 힘을 실었다.

최씨가 청구한 재심은 1·2심에서 잇따라 기각됐지만 지난해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재심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올해 9월, 부산지법 형사5부는 최씨의 중상해 등 혐의 선고공판을 열고 최씨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61년 만에 다시 나온 법원의 판단이었다.

서 변호사는 “어떤 시대든 피해자의 목소리엔 힘이 있다”며 “최말자 할머니의 궤적은 많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할머니 곁에는 변호인단, 여성단체, 동료 등 수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며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피해자들이 많은데, 고개를 돌려보면 정말 많은 조력자들이 존재한다. 피해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언니, 이윤택 피해자들 우리가 좀 만나봐요”

서 변호사는 직접 피해자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는 2018년 연출가 이윤택에 대한 미투 운동이 벌어지자 대학로로 향했다. 대학로의 한 극단에서 피해자들을 만난 서 변호사는 그들을 대리하기로 했다. 그는 책에 “당시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자는 나날이 계속됐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변호사로서의 확신을 느꼈다”고 적었다. 서 변호사가 '앞으로도 피해자를 위해 변론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왜 피해자를 위한 변론을 하게 되었냐고 묻는다.내 답변은 조촐하기 짝이 없다. 그저 그 사람들의 옆에서 그들의 삶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돕는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편에 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언어의 구조를 바꾸고, 침묵에 이름을 붙이고, 피해자가 자기 감정을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책 ‘법정 밖의 이름들’ 中)

서 변호사는 법률의 효용을 아는 만큼 구멍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특히 언어에 관심이 많은 그는 ‘성적 수치심', ‘성희롱’ 등 낡은 법률 용어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은 부끄러움이나 수치심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때로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나타난다”며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는 ‘피해자는 부끄러워 해야 한다’ 등 편견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2년 국회는 성적 수치심을 불쾌감 등으로 바꾸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흐지부지 끝났다.

“사람들은 흔히 범죄 피해자 지원을 ‘고통스럽고 어두운 일’이라 여긴다. 그러나 실제 현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마다 하는 일도, 개성도, 품고 있는 가치도 달랐다. 요즘 말로 힙한 곳이다" (책 ‘법정 밖의 이름들’ 中)

힙한 곳 한가운데 있는 서 변호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지금처럼만 살고 싶다”고 답했다.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서 변호사의 책은 이렇게 끝맺는다. “말이 닿는 자리까지, 사람을 지키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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