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일 만의 ‘가자 휴전’

2025-01-16

비통한 울부짖음만 가득했던 가자지구가 실로 오랜만에 축포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전쟁이 시작된 2023년 10월7일 이후 출생한 아이들은 어쩌면 태어나 처음 듣는 웃음소리일지도 모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15일(현지시간) 6주간 전투를 중지하고, 인질과 수감자를 맞교환하면서 영구적 휴전을 논의하는 3단계 휴전안에 합의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인 조 바이든과 차기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는 휴전 타결에 서로 자신의 공이 컸다고 강조하지만, 이 뒤늦은 휴전을 차마 ‘외교적 승리’라 부를 순 없다.

한 가자지구 주민은 알자지라에 말했다. “휴전이 되자마자 가족과 형제들을 만나러 갈 겁니다. 그들을 제대로 묻어주지 못하고 왔어요. 무덤을 만들어주고, 이름을 적어줄 겁니다.” 그는 1년여의 피란 생활 끝에 이제야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에겐 더 이상 돌아갈 집도, 가족도, 친구도 없다.

포성이 멎은 가자지구에서 우리가 목도할 것은 인류가 저지른 학살 현장의 증거들이다. 가자지구 인구 2%에 해당하는 4만6707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 중 신생아를 포함한 어린이가 4분의 1이 넘는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행운은 없다. 신체 절단 등 영구적 부상을 입은 수만명의 사람들은 먹고살 길조차 막막하다.

이 전쟁이 무엇을 남겼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이스라엘은 더 안전해졌는가.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면 아래 끓고 있는 중동의 반이스라엘 정서는 훗날 하마스보다 더 강경한 새 무장조직을 배태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귀환으로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더 가중될 것이다. 트럼프는 가자지구에 새 팔레스타인 통합정부가 들어서는 걸 용인하지 않고, 이스라엘 극우정부가 불법 정착촌을 확장하는 데 눈감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이 확전으로 들쑤셔놓은 이란도 변수다.

휴전 합의 소식에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 휴전 합의조차 3단계까지 이행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단 것이다. ‘거대한 무덤’이 된 가자지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재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휴전은 세계가 저지른 실패를 수습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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