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 스님의 오두막이 화재로 전소되었어요.”
법정 스님의 맏상좌 덕조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두막 인근에 사는 스님이 직접 찍은 사진도 함께 보내왔다. 황망한 마음이 가라앉자 어른 스님이 오두막을 가꾸며 쓴 글이 떠올랐다.
“올봄에 흙방을 하나 만들었다. 4월 꼬박 방 한 칸 만드는 일에 골몰했다. 이전까지 나뭇광으로 쓰던 자리에다 방을 들였는데, 이 방은 시멘트를 전혀 쓰지 않고 구들장을 비롯해 모두 돌과 찰흙으로만 되었다. 구들장 위에 흙을 한 자쯤 덮었기 때문에 군불을 지핀 지 네댓 시간이 지나야 방바닥이 뜨듯해 온다. 이렇게 되면 사나흘 동안은 불을 더 지피지 않아도 방 안이 훈훈하다. 우툴두툴한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미친 바람 소리도 한결 부드럽게 들린다. 이 방에 나는 방석 한장과 등잔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서 나는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해 보고 싶다.” (‘흙방을 만들며’, 『오두막 편지』, 1997)
법정 스님 18년 오두막에 화재
몽땅 타버렸지만 말씀은 남아
글은 ‘문자 사리’, 여전히 읽혀

법정 스님은 이 흙방에서 18년을 사셨다. 이 오두막은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홀로 사는 즐거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아름다운 마무리』 등 제목만으로도 너무나 익숙한 책들 10여권이 집필된 소중하기 짝이 없는 산실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부랴부랴 짐을 꾸려 강원도 오대산 자락으로 달렸다. 계곡에 맑은 물은 그대로 흐르고, 스님이 심은 자작나무와 소나무들은 키 5m가 넘어 숲을 이루고 있다. 매화나무는 무사하고 모란은 꽃을 피워냈다. ‘나 없다’ 팻말을 붙였던 해우소만 덩그러니 남기고 오두막은 홀라당 타버리고 말았다.
나무판 위에 ‘수류산방(水流山房)’이라 먹으로 휘갈겨 쓴 현판도 한 줌 재가 되었다. 어른 스님 살아계실 적엔 한 발짝 와볼 생각도 못 하다가 떠나고 3년 후에야 찾아와서 손수 만든 그 흙방에 불 때고 잠잤던 기억만이 아스라하다.
수목장을 한 바위 위의 작은 소나무에 차 한 잔 올리고, 다 타버린 재를 한 움큼 잡아도 보았다. 그렇게 하루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돌아와서는 삼일동안을 몸살로 앓아누웠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미국의 그 월든 호숫가 오두막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법정 스님처럼, 누군가는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읽고 마음속으로라도 그리워할 기회마저 거두어 가버린 듯하다.
생전에 법정 스님은 30여권의 산문집과 번역서를 내었다. 그런데 입적 후 15년 동안에 법정 스님 관련 책들은 생전의 두 배인 60권을 넘어섰다. 그만큼 아직도 사람들에게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이 간절하게 필요한 시절이다.
열일곱 살 겨울 무렵, 법정 스님의 『말과 침묵』을 보물처럼 끼고 살았다. 한 구절 한 구절 그 비밀스런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그 방법으로 마음을 챙기고, 마음을 키웠다. 그 시절 법정 스님은 나의 롤 모델이었다. 나도 해인사에 가서 공부하고, 경전도 읽고, 참선도 하고, 글도 써야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10년 뒤쯤, 차에 관한 강연을 하는 자리에 유일하게 승복을 입고 자리한 나를 보고는 법정 스님은 크게 반가워하셨다. 그 후로는 스님이 함께한 찻자리에는 언제나 차를 우려내며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는 복을 누렸다.
좋아하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닮고, 오래된 부부도 어느 순간 닮아있다. 심지어 출가한 스님들 중에 스승의 말투와 행동까지 똑같이 하는 스님도 보았다.
나 역시 차를 마실 때에는 법정 스님의 차를 마시는 품격을 생각하며 마시고 덕담을 나눈다. 이따금씩 칼럼을 쓸 때도 스님의 글은 나를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고 있다.
세계적 고승 틱낫한 스님은 한 제자가 스님께서 열반하시면 재를 담아 탑을 세우고 싶다고 하자 “나를 작은 항아리에 담지 말아다오. 꼭 세우고 싶다면 명패에 ‘틱낫한은 없습니다’라고 적으라. 그래도 의미를 모르겠거든 ‘틱낫한은 저기 바깥에도 없습니다’ 하라. 그래도 여전히 모르겠거든 ‘당신의 숨결과 걸음 속에서 틱낫한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적으라”고 당부하셨다는 말씀이 뇌리를 스쳐 간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법정 스님의 육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5년이나 되었고, 그 오두막이 불에 타 없어졌어도 모두 우주 안에서 인연 따라 모였다 흩어지는 것들이다. 다만 ‘문자로 남겨진 사리’ 법정 스님의 글들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 속에 맑고 향기롭게 흐르고 있다.
오늘따라 법정 스님의 한 마디가 천둥 같은 경구가 되어 귓전에 맴돌고 있다.
“나는 여기에 없습니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