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경영체 등록이요? 꼭 해야 하는 거예요?” “의무는 아니지만 영농을 하신다면 등록하는 게 떳떳하지요.” 얼마 전에 귀농한 친지를 만나 나눈 대화다. 그에게 농업경영체 등록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됐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을 앞두고 농정개혁에 착수했다. 필자는 당시 농림수산부 관료들과 특별작업반에 참여해 농업경영체를 규정하는 데 한몫을 했다. 농업법인 제도를 제안해 1990년 4월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농발법)’ 제정으로 영농조합법인과 농업회사법인이 창설됐고, 1994년 12월 ‘농지법’ 제정을 통해 농지 소유·이용 주체로 ‘농업인’이 규정됐으며, 또한 ‘농발법’ 개정을 통해 농업법인을 협업경영체로 육성하게 됐다. 그 후 농업인과 농업법인을 통칭하는 ‘농업경영체’ 용어를 창안했는데, 2000년대 들어 ‘맞춤형 농정’의 일환으로 농업경영체 등록제도를 도입하는 기반이 됐다.
돌이켜 보면 농업인과 농업법인, 그리고 농업경영체라는 용어는 연구자로서 고민했던 농업경영 형태 구분에 근거한다. 즉, 개인과 집단 그리고 자연인과 법인의 구분이다. 그 후 이들 용어는 법률과 정책에서나 인용돼왔고 학계에서도 제대로 불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최근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농업경영체 등록기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농업경영체를 재정의해 농정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도모하자는 주장이다. 30여년 전의 농업인 기준이 아직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니 재검토 요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게도 보인다.
하지만 농업인 기준의 상향 조정은 한마디로 논의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여년간 수차례의 법률 개정을 통해 농업인의 범위만 확대되고 하한 기준은 그대로 유지된 것이 그간의 경과다. 오히려 농업인수의 축소를 우려해 영농조합법인 고용자와 농업회사법인 고용자까지 포함함으로써 ‘농업인=농업경영체’라는 개념만 모호하게 만들었다.
규정을 바꾸기보다 원칙을 되짚어볼 때다. 농업경영체의 사전적 의미는 “농업을 경영하는 주체”이며, 따라서 ‘농업’과 ‘경영’과 ‘주체’라는 개념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농업의 개념은 원물인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므로 협의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농업의 전후방산업까지 포함하자는 견해가 있는데, 여기에는 전후방의 범위를 어디까지 포함하는가 하는 논쟁이 따른다. ‘농산업’을 따로 정의하고 융복합산업화 정책으로 육성하면 될 것이다.
둘째, 경영의 개념은 관리하고 운영하는 활동이며, 농업경영은 농업자원을 이용해 생산을 영위하는 조직체다. 농업종사자는 경영자의 뜻에 따라 실행하는 사람이므로 농업경영체 등록이 불가능한 농업인(예: 농업법인 종사자)에 해당하며, 이들에 대해서는 고용 안정이나 복지정책 등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경영 주체의 개념은 주도적으로 경영하고 책임지는 사람인데, 가족농이나 농업법인이나 여러 사람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 영농후계자나 배우자라도 공동경영자로 등록할 수 있으므로 농업경영체로서 제약이 되지 않는다.
끝으로, 농업경영체 등록제도는 의무가 아니라 적극 참여로 성립된다. 농업인들이 자발적으로 등록하고 변경된 정보를 갱신해야만 제도의 실효성과 신뢰도가 높아진다. 이 제도를 통해 정부는 농업인에게 적합한 정책을 펼칠 수 있고 농업인들은 더 나은 혜택과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정호 환경농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