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긴 역사에서 보면 오늘날과 같이 모든 물자를 시장에서 거래하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사회적 분업이 제한적이었던 전근대에는 필요로 하는 물자를 대부분 스스로 생산해 소비했다. 그러나 근대는 기술 발전과 엄청난 사회적 분업 위에서 만들어졌다. 시장은 그러한 분업에 기초한 사회에서 자원이 배분되는 핵심적 제도가 됐다.
오늘날 경제학이 고도로 수식과 숫자를 다루는 학문이 된 것은 시장의 작동을 이해하고 정책적 수단을 강구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에 가끔은 제도나 가치, 문화 같은 요소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시장으로 포괄할 수 없는 요소들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노벨상의 계절이 지나갔다. 우리나라의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올해에는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이 덜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 사이에 사회과학에서는 유일하게 노벨상이 수여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세명의 경제학자가 결정됐다. 다론 아제모을루(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사이먼 존슨(〃), 제임스 A. 로빈슨(시카고대학교) 교수로, 이들은 국가간 경제 발전에 차이를 가져온 정치·경제적 제도 요인을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매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나오지만, 이번 수상자들만큼 한국 경제에 대해 사전적 이해가 높았던 수상자는 없었던 것 같다. 국가간 불평등과 빈부의 차를 연구 주제로 삼아왔기 때문에 그들은 세계 각국의 경제 사례를 다양하게 연구했음은 물론, 한국과 같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모범적 사례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남북으로 분단돼 각기 다른 제도하에서 상이한 발전의 길을 걸어왔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취 또한 극명하게 대비됐다. 이에 대한 비교를 위해서도 한국 경제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대해 ‘바람직한 제도에 기반해 이뤄낸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특권 사회에서 ‘포용적 사회’로 이행하면서 번영을 이뤄낸 한국의 경험에 깊은 공감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도 잘 알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저출생, 대기업 집중 등은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저성장의 징후를 짙게 보이고 있다. 기술에서의 우위가 조금씩 엷어지면서 수출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내외 기관들이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했다.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포용적 성장에 대한 회고와 성찰이 이뤄져야 한다. 성장의 과실을 함께 향유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 노동윤리도 강화된다. 남녀간의 차별,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인재의 특정 분야로의 쏠림 등도 전형적으로 포용적 성장을 저해하는 것들이다. 나아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동반성장하는 틀을 구축하지 않고서는 건강한 성장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
그동안 해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나왔지만 올해의 수상자들만큼 전하는 메시지가 우리의 경제에 깊은 울림을 준 적은 없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다.
김대래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