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클린턴함·부시함

2025-01-14

해군 함정은 각각 고유한 함명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엔 만재배수량 500t급 이하인 고속정을 넘는 규모인 구축함, 초계함, 호위함, 잠수함, 군수지원함, 기뢰부설함, 소해함(기뢰 제거), 상륙함, 구조함 등 함종에 따라 특별한 작명 규칙이 있다. 주로 이름난 군주나 장군, 독립운동가 등 역사적 인물이나 도시, 호수, 산봉우리 등 지명에서 따왔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대부분 미국의 작명법을 따랐다고 한다.

미국은 ‘바다의 제왕’ 항공모함을 11척이나 운영하며 세계 최고의 해군력을 뽐낸다. 새로 건조하는 항모에 재직 시 지도력을 인정받은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붙이는 전통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보지 못한 채 1945년 4월 숨진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기린 프랭클린 D 루스벨트함이 대표적이다. 그해 10월27일 취역한 이 항모는 1977년 9월 퇴역 때까지 전 세계를 누볐다. 현재 운영 중인 항모 11척 중에도 해군 제독의 이름에서 유래한 니미츠함과 정치인에서 딴 칼빈슨함, 존 C 스테니스함을 빼면 모두 역대 대통령으로 명명됐다. 건조를 마친 핵 추진 항모 존 F 케네디함은 올해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지난달 타계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2005년 취역한 핵 잠수함인 지미 카터함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1946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7년간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핵 잠수함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이런 전통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신형 핵 추진 항모에 클린턴, 부시라는 이름을 붙일 예정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발표한다”며 “빌과 조지에게 직접 이 소식을 전했을 때 그들은 매우 겸손해했다. 두 사람 모두 군 통수권자로서 책임의 무게를 직접 경험해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주력 전투함인 구축함의 국산화에 힘을 쏟아온 우리나라는 세종대왕함에 이어 광개토대왕함, 정조대왕함으로 최첨단 구축함 계보를 이어왔다. 명명된 위인들을 보면 모두 역사적으로 검증받은 뛰어난 군주들이지만, 우리가 발 디딘 21세기와는 시간상으로나 심리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군함과 함께 우리 영토를 지키며 ‘유방백세(流芳百世)’할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황계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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