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토종 버거 브랜드인 롯데리아가 8월 ‘버거의 본고장’ 미국에 1호점을 열었다. 수백 명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서며 오픈런을 했다. 온라인에는 3~4시간씩 기다렸다는 후기가 잇따라 올라왔다. 불고기버거·새우버거·비빔라이스버거 등 한국의 맛을 가미한 ‘K버거’를 맛보기 위해서다.
K푸드 열풍을 타고 우리 식품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롯데리아를 비롯해 뚜레쥬르·파리바게뜨 등 햄버거에서 베이커리까지 ‘원조 국가’로 역진출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최근 누적 시청 수 2억 3600만 회를 기록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인공처럼 라면과 김밥을 맛보겠다는 외국인들이 줄을 섰다.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빨간 국물의 매운 라면을 젓가락으로 능숙하게 먹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K푸드의 세계적인 인기는 K팝·K드라마 등 K컬처와 유튜브·틱톡 등 온라인 콘텐츠 확산과 함께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국내 식품 기업들의 도전과 혁신에 기인한다. 식품 회사들은 주요 국가의 대형 유통 채널에 입점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 공장을 짓거나 해외 업체를 인수하고 한식 발전과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CJ그룹은 미국에서 8억 3200만 달러(약 1조 1500억 원)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CJ제일제당은 2019년 미국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하고 사우스다코타주에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공장을 짓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미국에서 올린 매출만 4조 7138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잘나가는 식품 기업들도 국내에서는 내수 부진과 원자재 값 상승, 인건비 인상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연초부터 제품 가격을 줄줄이 인상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수익성은 되레 뒷걸음질 쳤다. CJ제일제당의 올 2분기 식품사업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했고 롯데웰푸드(-45.8%), 농심(-8.1%), 대상(-8.1%) 등도 영업이익이 줄었다. 삼양식품·풀무원 등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일부 기업들만 선방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출 전선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제의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고 15%의 대미 관세 부담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7월 라면·과자 등 가공식품을 포함한 농식품 대미 수출 금액은 1억 3900만 달러(약 19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6.7% 감소했다. 대미 농식품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든 것은 2023년 5월 이후 2년 2개월 만에 처음이다. 그나마 효자 역할을 하던 수출조차 미국의 관세 여파로 녹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정부가 부랴부랴 미국 상호관세 대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 등을 활용한 원료 구매·시설 자금 지원 등의 조치를 발표했지만 기업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잇따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더 센’ 상법(2차 상법개정안)으로 국내 기업 전반의 활동이 위축될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생산 현장이 파업과 쟁의의 늪에 빠지고 그 비용이 고스란히 사회로 전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개정된 상법은 기업의 소송 리스크 확대와 경영권 무력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취임 이후 경제계와 첫 회동을 하면서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며 “정부는 우리 기업인들이 경제성장 발전에 기여하고 자기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 협조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거대 여당의 폭주로 통과된 규제 법안들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다며 장단을 맞췄다. 아쉬울 때는 기업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정작 기업의 고충과 애로에는 눈을 감아버린 정부와 여당의 모습은 답답하기만 하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비상하려는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기는커녕 족쇄를 채워서야 되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