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에서 ‘정윤석’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정 감독이 지난 8월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유죄 판결(벌금 200만원)을 받았다. 혐의는 단순건조물침입. 역설적이게도 이는 그가 역시나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이번 현장은 지난 1월19일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난동을 부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이었다는 것이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달랐다.
검찰은 난동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정 감독에게 특수건조물침입 등 혐의를 적용해 다른 62명과 묶어 기소했고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가 손에 든 것이 쇠파이프가 아니라 카메라였다는 점, 난동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이를 기록하려 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 감독이 이날 촬영한 영상 일부는 JTBC의 특집 다큐멘터리 <내란, 12일간의 기록>에 사용됐고, 정 감독은 제작진으로 이름을 올렸다.
법원 판단도 검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촬영행위만을 하였을 뿐 당시 모여 있던 다중과 합세하려고 하거나 그 위력을 보이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는 취재 목적으로 침입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전혀 촬영행위를 한 바 없거나 다른 집회참가자들의 위력에 합세하는 등의 행위를 보인 다른 피고인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행태”라고 인정하면서도 “통제 중인 법원 경내에 침입했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간, 서울서부지법에는 정 감독과 비슷하게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또 있었다. 바로 JTBC 취재진이었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서는 ‘공익적 언론 활동’이라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JTBC 취재진은 그날, 그곳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도해 기자상을 받았다. 같은 행위를 하고도 한쪽은 상을 받았고, 다른 한쪽은 처벌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감독과 ‘제도권 언론’이라는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이는 ‘이중 잣대’다.
기록 활동의 본질은 소속이 아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격히 변하면서 언론과 예술, 특히 탐사 보도와 독립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많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주저 없이 현장에 뛰어들어 기존 언론이 놓친 진실을 길어 올리기도 했다. 검찰도, 법원도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언론사 소속’이라는 기준으로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분명히 시대착오적이다. 재판부는 또 판결문에서 “피고인으로서는 법원 경내에까지 진입하지 않더라도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영상을 어느 정도 촬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므로, 긴급성이나 보충성이 인정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 감독에 대한 유죄 판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1심 판결을 앞두고 한국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한 수십 개 단체와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정 감독의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동참했다. 영화인들은 “시대를 기록하고 진실을 남기기 위한 예술가의 행위가 범죄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가혁 JTBC 보도국 밀착부 부장도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를 통해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영상 취재를 위해’ 법원이 무참히 짓밟히는 그 현장에 있었다고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다”며 “그간 작품 활동, 수상 내역, 사회적인 연대 활동에 비춰 볼 때 그가 당시 현장에 ‘폭동 가담’을 위해서 ‘폭동 가담자’로서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1심 판결로 끝이 아니다. 정 감독은 항소 의사를 밝혔고, 공은 2심 재판부로 넘어갔다. 상급심은 1심의 기계적 법률 해석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갖는 사회적 가치와 언론의 범위를 폭넓게 바라봐야 한다. 정 감독에 대한 재판은 법이 이를 어디까지 품을 수 있는지, 그 기준을 새롭게 세울 기회다.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바뀌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