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물밑 거래 선호에 일각 기대
전문가 “진지한 역할 기대 어려워”
류허 전 부총리·슈워츠만 등 부각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신설되는 외부 자문기구 정부효율부의 수장으로 발탁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미·중관계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머스크 CEO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① 머스크 역할론
일각에서는 머스크 CEO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적대적 대중 정책을 완화하고 물밑에서 미·중 관계 가교 구실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른바 ‘머스크 역할론’의 부상하는 이유는 트럼프 당선인의 외교 스타일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외교를 일종의 비즈니스로 여기고 극적인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정부의 방향을 설정하는 집권 초기에는 비공식 채널을 통한 거래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머스크 CEO는 중국과 이해관계로 깊이 얽혀 있다. 그는 2018년 중국 상하이에 최초로 테슬라 제조공장인 기가팩토리를 설립하고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테슬라 상하이 공장의 누적 수출량은 지난 9월 100만대를 돌파했다. 상하이 공장에서 제조한 전기차 모델3와 모델Y는 북미로도 수출한다.
중국 정부도 테슬라를 밀어준다. 지난 5월 연간 대용량 배터리 1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건설 요청을 승인했으며, 8월 완전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데이터 수집과 반출도 허가했다. 이로써 테슬라는 개인정보에 민감한 서구에서는 실현하기 쉽지 않은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해졌다. 중국 정부는 테슬라를 중국과 서방 기업의 협력 성공 사례로 내세운다.
머스크 CEO는 중국 고위층과 교류하며 대중 정책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올해 4월에는 중국을 방문해 리창 총리와 회동했다. 올해 초에는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 대상 관세를 100% 인상하자 미·중 갈등 심화를 우려하며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의 중국산 전기차 대상 고율 관세 부과에도 반대 의견을 밝혀 왔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현실화되면 테슬라도 타격을 입는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 전기차에는 100~200%까지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 머스크 회의론
이런 이유로 중국 내에서는 머스크 CEO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중국인의 영원한 친구’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회의적이다. 미·중 관계는 이미 양국의 전략이 짜여 있을뿐더러 머스크 CEO가 비공식 외교를 수행하기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 정책에 대한 불안과 머스크 CEO의 대중적 인기가 결합된 바람이라고 분석한다.
요제프 그레고리 마호니 화동사범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모두 머스크가 자신의 의제를 가지고 있으며 머스크를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머스크 CEO의 역할은 피상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머스크 CEO의 중국 사업에 얽힌 이해관계는 워낙 커서 향후 행보에 대한 궁금증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월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에 건설 중인 테슬라의 상하이, 베를린에 이은 세 번째 해외 기가팩토리 근처에 중국산 부품 제조업체들이 대거 유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제조업체들이 머스크 CEO의 안내에 따라 멕시코에 투자하거나 진출해 사실상의 공급망 규제를 우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는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머스크 CEO의 이 같은 행보는 바이든 행정부의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더 강한 무역전쟁을 예고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비즈니스와 머스크의 비즈니스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③ 부각되는 다른 인물은?
머스크 CEO 역할론은 ‘기대 섞인 바람’이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비공식 임무를 수행할 만한 사람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 입장에서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왕후이야오 중국세계화센터 설립자는 머스크 CEO 외 애플 CEO 팀 쿡, 사모펀드 블랙스톤 그룹 CEO 스티븐 슈워츠먼 등 중국과 관계가 밀접한 사업가들이 그룹으로 활동하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경제 채널 CNBC에 말했다. 슈워츠먼이 트럼프 1기 시절인 2018년 중국을 8번 방문해 무역전쟁 확대를 원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의사를 전달했던 이력이 있다. SCMP도 그를 유력한 주중 미국대사 후보로 거론했다.
SCMP는 중국 측 비공식 채널로 ‘시진핑의 경제 책사’로 불렸던 류허 전 경제부총리를 꼽았다. 류 전 부총리는 시 주석 집권 1∼2기 경제정책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때 부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그 이후에도 미국의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만나는 등 비공식적으로 중국 경제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