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어렵다는데…에쓰오일은 9조 투자해 판 키운다, 왜

2024-10-23

중국·중동발 공급과잉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LG화학은 연초 석유화학 원료 스티렌모노머(SM)를 생산하는 대산·여수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나프타분해설비(NCC) 2공장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중국 내 범용 제품 공장을 모두 매각한 데 이어 말레이시아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처분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에쓰오일(S-Oil)이 가는 길은 다르다. 석유화학 사업을 더 키운다. 국내 석유화학 사상 최대 규모인 9조2580억원을 투자하는 샤힌프로젝트 얘기다. 지난해 3월 착공,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석유화학 공장을 건설 중인 샤힌프로젝트 현장을 지난 22일 다녀왔다. 샤힌은 아랍어로 매를 뜻한다. 매는 에쓰오일의 모기업 아람코의 본사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조(國鳥)다.

토목 물량만 레미콘 5만8000대

이날 오전 내린 비로 건설 현장은 작업자 대다수가 철수해 조용했다. 그러나 구릉 위 현장사무소에서 내려다본 크레인과 전문 차량 등이 즐비한 풍경에선 평소의 분주함이 가늠됐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스팀 크래커였다. 스팀 크래커는 열을 이용해 나프타를 분해하는 시설물로, NCC 종류 중 하나다. 구축 예정인 10기 중 8기가 먼저 올라가고 있었다.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이현영 디렉터는 “스팀 크래커는 전남 영암에 있는 플랜트 업체에서 제작하는데, 거대하다보니 해상으로 이송해 조립해 올리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샤힌프로젝트 부지는 88만1000㎡로 여의도의 10분의 1 크기다. 에쓰오일의 기존 정유 시설 주변 세 곳으로 흩어져 있는 부지는 구릉 위에서도 한 눈에 담기지 않았다. 부지는 공정별로 나뉘어 있었다. 석유화학 제품 생산 공정은 크게 원유에서 나프타를 추출하고,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 등을 뽑아낸 뒤, 이를 가공해 폴리에틸렌(PE) 등 합성수지를 만드는 단계로 나뉜다. 부지는 ①원유에서 나프타를 추출하는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 장치와 나프타를 에틸렌 등으로 분해하는 스팀 크래커 부지 ②에틸렌 등을 이용해 합성수지를 만드는 폴리머 공장 부지 ③에틸렌 등 저장시설로 구성돼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설비 공사이다보니, 공사 자재 물량도 엄청났다. 토목 콘크리트 양만 총 34만8197㎥다. 레미콘 차량 1대가 5만8000번 왕복해야 옮길 수 있는 양이다. 공정의 39.8%가 진행된 현재 월 4000명의 인력이 투입되고 있는데, 내년 3분기엔 1만4000명까지 늘어날 예정이라고 현대건설은 설명했다. 지역 경제에 이미 활기가 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26년 6월이 준공이 목표다.

샤힌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다양하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부러움 섞인 한숨을 쉰다. 업황이 나쁜 상황에서도 9조원 이상을 투입할 수 있는 아람코의 자본력에 대한 부러움과 샤힌프로젝트가 2026년 6월 완공시 공급 과잉이 더 심화될 것이란 한숨이다. 샤힌프로젝트의 스팀 크래커는 연간 180만t(톤)의 에틸렌을 생산할 예정인데 단일 설비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울산 샤힌의 완공 시점이 석유화학 업계 구조조정의 데드라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자신감 원천은 원가 경쟁력

샤힌프로젝트가 투자 대비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지도 업계의 관심이다. 2019년 검토 당시엔 석유화학 업계의 공급과잉이 심하지 않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프로젝트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박성훈 에쓰오일 공장지원 부문장은 “시장 반등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중국·중동의 설비 증설이 마무리되면 석유화학 제품 공급과잉이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에쓰오일의 대규모 투자에는 가격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샤힌프로젝트에서 첫 적용된 아람코의 신기술 TC2C가 핵심이다. TC2C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원유에서 나프타를 추출하는 기술로, 에쓰오일은 TC2C로 나프타 추출량이 보통 시설물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전망한다. 보통 석유화학 기업들은 나프타를 사와서 제품을 생산하는데, 에쓰오일은 샤힌프로젝트 완공후 나프타를 바로 생산해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게다가 나프타를 추출할 원유도 아람코에서 공급받는다. 석유화학 공정의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자체 수급하면 경쟁사보다 원가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매출 비중을 현재 12.8%(올해 반기보고서 기준)에서 25%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리포트에서 “에쓰오일은 중장기적으로 샤힌프로젝트 준공 이후 원가 경쟁력 우위를 바탕으로 이익 수준이 상향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압도적인 샤힌프로젝트의 상대적 경쟁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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