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은 흉터만은 아닐것”…생채기·성장통 남은 동덕여대 투쟁 ‘그 후’

2025-05-14

지난해 11월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 이후 6개월

“교수 얼굴 보기 힘들어” 분열된 학교 공동체

고통으로 성장도 했지만…‘민주적 발전’ 어떻게

지난 4월말 찾은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동덕여대 캠퍼스에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여전히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공학 전환 반대’, ‘김명애 총장 사퇴’ 등을 적은 알록달록한 래커칠이 곳곳에 남았다. 대자보는 다 떼어졌지만 본관 앞 운동장과 좌측 스탠드에는 학생들이 놓고 간 ‘학잠(학교 점퍼)’이 빛이 바랜 채 놓여 있었다. 다른 학교 이름이 적힌 학잠도 곳곳에 보였다. 본관에서는 사설 경비업체가 드나드는 이들의 신분을 확인했다.

동덕여대는 6개월 넘게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11월 동덕여대 학교 측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진 것이 계기였다. 그동안 학과 통폐합, 캠퍼스 내 학생 사망 사고 등 학교의 행보에 반감이 쌓여 있던 학생들은 본관을 점거하고 학내외 시위, 단체 수업 거부, 학교재단 비리 고발 등으로 저항을 이어나갔다. 학교 측은 래커칠 등의 복구 비용을 ‘최대 54억원’이라고 밝히며 맞대응했고, 학생 몇몇을 특정해 형사고소했다.

대학 내 학사분규는 드문 일이 아니지만, 동덕여대 사태는 한국 사회의 안티페미니즘, 백래시 분위기와 결합되며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의 사회적 파장을 남겼다. 시위 주체인 학생들은 여성혐오적 조롱과 온·오프라인 위협에 노출됐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불법계엄 선포’란 외부 요인으로 본관 점거는 종료됐으나 공학 전환 논란은 불씨로 남아 있다.

▶[플랫]“여대의 소명이 다하지 않았다”···‘동덕여대 공학 전환 논의’에 쏟아진 반대

▶[플랫]‘남녀 공학 반대’ 동덕여대 1973명 “학교는 학생 목소리 듣고 대화 나서라”

20대 초중반을 지나는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지난 갈등의 시간은 어떤 현재로 남아 있을까.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이달 초 동덕여대 재학생 및 휴학생 7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학교 공동체와 개개인이 지난 6개월간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사제관계에는 커다란 균열이 남았고, 학생들 상당수는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한다. 동시에 학생들은 이 상처를 통해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시민으로 나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어쩌면 래커칠 자국보다 더 지우기 어려울 이 상처를 봉합하는 일이 이제 학교 구성원들의 과제로 남았다.

불신 위에 불신이 덧대진 동덕여대는 올 3월 평소처럼 개강을 했으나 분위기는 예전같지 않다. 기존 재학생 중에는 이번 학기에 등록하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다. 뜻밖의 균열 지점은 사제관계였다. 플랫이 만난 학생들은 재학·휴학 여부를 떠나 “교수의 얼굴을 예전과 같이 볼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학생들은 지난해 11월20일 학교 홈페이지에 ‘학내 상황 정상화를 위한 동덕여대 교수 호소문’이 올라왔을 때의 실망감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동덕여대 교수 235명은 성명에서 시위를 “일부 학생들의 불법행위”, “자신의 책임을 가중시킬 수 있는 행위” 등으로 표현했다. 일부 교수가 익명 대자보로 학생들의 편에 섰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학생들은 교수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이 사건을 계기로 ‘지식인’, ‘어른’의 표상으로 여겨졌던 교수에 대한 기대가 깨졌다고 했다.

▶[플랫]침묵 깬 동덕여대 교수들 “고소 취하하고 회복 방안 마련하라”

시위 당시 신입생이었던 김주희씨(가명)는 “아무렇지 않게 수업 듣고, 시험 보고 하는 것이 괴리감 느껴질 정도로 작년과는 다른 세상 같아서” 휴학을 했다. 김주희씨는 “평소 학생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던 교수도 명단에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 교수의 수업에 가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지영씨(가명)도 “교수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었던 것도 휴학의 이유”라며 “정신적으로 존경하던 교수가 앞장서서 학교 주장을 말하는 것을 보고 배신감이 컸다”고 했다.

학교로 돌아간 학생들도 속이 시리긴 마찬가지다. 최유진씨(가명)는 “수업을 들어도 집중을 잘 못한다. 당장 옆에 있는 학우가 고소를 당했을 수도 있고 내 앞의 교수가 학생 탄압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는 점에서 ‘내가 여기서 배우는 것이 진실된 배움이 맞나’란 회의감이 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내에서 신상이 특정돼 추가 고소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감돌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도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거나, 학교(6호선 상월곡역)로 가는 지하철을 탈 때부터 얼굴을 가린다고 했다. 정유리씨(가명)는 “강의 중 ‘작년에 데모한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라’는 교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학교가 학생들을 고소하려 혈안이 된 상황에서 왜 물어보는지 속내를 모르겠다. 스승에게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고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지민씨(가명)는 “학교에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하고 가야 되는 점이 힘들었고 (교내 건물에) 학생증을 태그하는 것도 무서웠다”고 했다.

안티페미니즘에 기반한 심각한 수준의 위협에 시달린 끝에 불안, 우울 등을 호소하는 학생들도 많다. 특히 학교 측이 별다른 근거를 밝히지 않은 채 피해복구액이 24억원에서 54억원에 달한다고 발표한 뒤 공격과 조롱은 더 심해졌다. 심지어 동덕여대와 아무 상관 없는 뉴스나 유튜브 영상 댓글에서도 동덕여대 학생을 언급하며 ‘불법폭도’, ‘페미의 최후’라고 조롱하는 일이 ‘밈’이 됐다.

조롱과 공격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최근까지도 에 출연해 “(동덕여대 학생들이) 평소에는 막 때려 부수고 래커칠하고 그래도, 제 앞에선 안 그럴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일부는 캠퍼스 내부로 들어오거나 학교 주변을 촬영해 방송하며 정신적, 물리적 공포를 조장하기도 했다.

▶[플랫]“페미 동아리가 계엄군 행세”…‘동덕여대 시위’를 ‘계엄군’에 비유한 개혁신당 최고위원

특히 온라인상 공격은 ‘몸 팔아서 갚으라’, ‘엑셀방송(성적인 방송)을 해서 갚으라’ 등 ‘여대생’,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근거한 젠더폭력 양상의 비난이 주류를 차지했다. 캠퍼스 내부에 들어오는 남성이나 학교 주변을 촬영하러 온 소위 ‘사이버 래커’, 신남성연대 등이 정신적·물리적 공포를 조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이러한 비난과 위협 탓에 새로 정신과를 다니게 됐거나 먹던 약을 증량했다고 호소했다.

이지민씨는 한 유명 남성 유튜버가 갑자기 닥쳤던 날을 떠올렸다. 그는 “학우들과 다같이 정문으로 갔다. (그 와중에도) 얼굴이 팔리면 안되니까 뒤돌아서 스크럼을 짰다. 그때 손을 잡고 있던 옆자리 친구가 덜덜 떨고 있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정유리씨는 다른 남성이 캠퍼스 안으로 들어와 쫓아냈던 일을 언급했다. 그는 “당시 그 남자를 경찰에 넘기고 학교로 돌아가는데 너무 무서워 대성통곡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학우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했다. 이씨와 정씨는 지난해 시위 이후 무력감, 우울감, 불안감 등에 처해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플랫]20대 남성, ‘남녀공학’ 반대 시위 중인 동덕여대에 한밤중 무단 침입

박지영씨도 다니던 병원에 괴로움을 털어놓고 복용량을 늘렸다. 그는 “그들(악성 댓글, 유튜버 등)은 동덕여대 학생을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얘네들이 54억원을 물어내야 한다’며 고소해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햄스터가 아무리 찍찍거려도 인간이 듣지 않는 것처럼, 무기력한 햄스터가 된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유희연씨는 “최소값보다 편차가 더 큰 그 수치(24억~54억원)를 사람들이 진짜라고 믿는다는 지점이 무서웠다”고 말했다.

학교 근처에 사는 윤다은씨는 물리적 위협에 대한 걱정이 여전히 크다. 그는 “지나다니면서 뭔가 촬영하는 사람이 있는지 계속 경계하게 된다. 며칠 전에도 사이버 래커가 왔었고, 학교 내부에서 래커칠 사진을 찍어가는 남성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학교가 ‘학생들을 향한 과도한 언행을 자제해 달라’고 한 마디 해줄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래커칠 자국보다 더 지우기 힘들 상처가 남았다. 이 상처는 아직 열려 있다. 학생들은 이를 봉합하기 위해선 동덕여대의 정체성을 되살피고, 더 나아가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학내 논의 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비민주적 행정의 사례는 물이 새고 천장이 떨어지는 위험한 시설물 수리·철거 미비, 학생 사망 사고 현장 CCTV 비공개, 학과 통폐합, 전임 교수 부족, 교지비 대납 일방 중단 등이었다.

최유진씨는 “우리 학교의 정체성(‘여자’ 대학교)을 바꾸는 데 학생들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는다는 건 존엄을 짓밟는 행위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유희연씨는 “가장 중요한 건 비민주적 행정 절차를 바꾸지 않으면 다른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학생은 아무 의견을 낼 수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동덕여대 학생들이 20대 초중반으로선 드물게 ‘집단적 저항’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이 경험이 무엇을 남겼느냐’를 묻자 ‘성장’이란 답이 돌아왔다. 학교 밖 세상까지 달리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다.

최유진씨의 경우 윤석열 탄핵 광장에 나선 것이 하나의 계기였다. 그는 광장에서 ‘잘하고 있다’, ‘끝까지 연대하겠다’란 응원을 받았다. 최씨는 “이때 받았던 온기를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어지면서 활자 너머의 연대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나와 학우들은 외면받는 싸움을 했다. 이 경험을 통해 광장의 다른 시민들, 노동자들이 얼마나 외로울지 깨달았다. 나의 아픔에서 벗어나 남의 고통까지 같이 아파할 수 있는 힘을 이번에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당일에도 여러 집회에 들렀다.

김주희씨는 자신의 일상을 바꿨다. 그는 아르바이트 사장에게 말해 주휴수당을 받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눈치 보느라 말 못했을 것”이었다. 그는 “연대의 엄청난 힘을 몸으로 느끼면서 내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상처는 받았지만 깊은 연대감을 느낀 소중한 경험”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다은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내향적인 성향을 딛고 한 모임의 임원을 맡았다. 윤씨는 “‘다른 사람이 해주겠지’가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의견을 피력할 줄 알게 된 것이 개인적인 성장”이라고 꼽았다.

동덕여대의 분열이 영원히 벌어진 상처로 남을지, 성장통으로 기억될지는 구성원들에 달렸다. 학생들은 남녀공학 전환에 관한 논의를 넘어 총장직선제 도입, 학내 의결 기구에 학생 비율 상향 등 더 근본적인 민주적 체제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소·징계 철회, 래커칠 지우기 등보다 더 세심한 논의를 필요로 하는 의제들이다. 학교와 학생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지민씨의 말이다. “정말 아프고 힘들었지만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보겠나’고도 생각해요.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큰 경험인지도 절실히 깨닫고 있고요. 이런 것들에 제게 흉터로 남겠지만 보기 싫은 흉터는 절대 아니겠죠.”

※기사 본문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이름은 전부 가명이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의 신상정보가 특정되지 않도록 기사에 소속 학과, 학번 등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