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주요 방산 품목인 K9 자주포를 베트남에 수출하는 계약이 최종 성사됐다. K9이 공산권 국가에 수출되는 건 이번이 처음으로, 베트남은 이로써 세계 11번째 K9 도입 국가가 됐다.
14일 업계와 정부 소식통을 종합하면 K9 제조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정부 간 거래(G2G)로 베트남 측에 K9 자주포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방위사업청과 한화 측은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지만 수출 규모는 25문+α이라고 한다. 액수로 환산하면 한화 약 3500억원 규모다.
한국이 공급하는 K9은 베트남 육군에 최종 인도될 예정이다. 과거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이 무기 체계를 교역하게 됐다는 건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무기 수출은 국가 간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앞서 해군이 베트남에 퇴역 함정을 이양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지상군 전력을 본격적으로 수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은 튀르키예·폴란드·노르웨이·루마니아·호주 등에 이어 11번째로 K9 구매국 대열에 합류했다. K9을 유럽 등 서방이 아닌 동남아 지역에 수출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호주·노르웨이 등의 계약 물량이 30문 안팎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베트남의 수출 규모도 결코 작지 않다.
K9 수출은 국제 정세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베트남은 지금까지 러시아 등 공산권 국가의 무기에 의존해왔는데, 한국 무기 체계를 받아들인다는 건 서방의 무기 체계를 본격 도입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어서다. K9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미국 등 서방의 포탄 표준 구경인 155㎜를 채택하고 있다. 미 육군의 사거리 연장유도포탄인 엑스칼리버와 155㎜탄의 호환성 검증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이는 베트남이 최근 남중국해와 국경에서 중국과 긴장이 고조되는 것과 무관치 않은 흐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베트남 육군은 최근 무기 체계를 포함한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국경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차단하는 목적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베트남은 미·중 모두와 전쟁을 치른 역사가 있다. 중국과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가깝지만, 국경 분쟁에 이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까지 미국 못지 않은 ‘피의 역사’가 있다. 반대로 적국이었던 미국과는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추세다.
다만 한국과 베트남 정부는 K9 수출 계약의 성사 여부조차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다. 한 소식통은 “최종 수출 합의는 이미 올해 3월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베트남 측에서 ‘로키 대응’을 한국에 각별히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표면상 미·중 사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대나무 외교’를 표방하고 있는 베트남 정부 내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K9 도입을 통해 베트남이 서방으로 기울고 중국을 겨냥한다는 인상을 중국 측에 주지 않으려는 이유에서다.
155㎜ 포신을 쓰는 K9 자주포는 K307포탄을 통해 사거리 약 40㎞까지 화력 지원을 하는 무기 체계다. 분당 6~8발 사격이 가능하고, 급속 발사 모드로는 15초 이내 포탄 3발을 쏠 수 있다. 사격 직후 60초 안에 다음 사격 모드로 전환하는 '신속 진지 변환(shoot-and-scoot)' 기능이 장점이다. 사막·설원 등 열악한 여건에서 기동성·생존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