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김지찬의 키는 1m63이다. 한국 프로야구 최단신 선수다. 2023년 타율이 0.292였는데, 2024년에는 0.316으로 높아졌고, 올 시즌에는 무려 0.395나 된다. OPS 역시 0.738→0.789→0.981로 상승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잠시 빠져 있지만, 올 시즌 데뷔 후 최고 성적이 기대된다.
워낙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이기도 하지만, ABS(자동 스트라이크 볼 판독 시스템·로봇 심판) 효과를 봤다는 평가가 많다. 사람 심판이 볼 때는 김지찬의 신장이 규칙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로봇 심판이 보니, ‘김지찬에게 공정한’ 스트라이크 존이 적용됐고, ‘높아서 치기 어렵지만 스트라이크가 선언되던 공’이 사라졌다(반대로 투수들은 김지찬에게 맞는 스트라이크 존에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까다로워졌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김지찬이 (낮은 존에 집중하다 보니) 원바운드 공도 커트해낸다”며 웃었다.
ABS 도입 후 달라진 야구처럼
제도의 변화는 많은 것을 바꾼다
조기 대선 앞 쏟아지는 공약이
어떤 나비효과로 올지 검토해야
ABS 도입은 김지찬에게 ‘공정한 존’을 제공했고, 김지찬은 리그 최고 수준의 타격 성적을 낼 수 있게 됐다. 로봇 심판 제도 도입 첫해였던 지난해 사람 심판이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던 베테랑, 스타 편향이 제거되면서 젊은 타자들의 성장이 도드라졌다. 제도의 변화는 아주 많은 것을 바꾼다. 이른바 나비효과다.
야구는 2014년부터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누상에서 찰나의 순간 벌어지는 아웃과 세이프를 ‘느린 화면’으로 확인해 판정한다. 눈으로 보기 힘든 차이도 느린 화면에서는 드러난다. 그냥 공정해지기만 했을까. 주자들의 슬라이딩 방식이 바뀌었고, 내야수들의 태그 수비 방식이 달라졌다.
주자들은 팔을 휘저어 태그를 피하는 ‘스위밍 슬라이딩’을 한다. 수비수는 베이스 위에서 공을 잡고 기다리다 상반신을 태그하는 ‘기본기’를 버렸다. (도루 때) 2루 베이스에서 투수 쪽으로 한 걸음 나와 살짝 짧아진 송구를 잡은 뒤 주자의 손이 베이스에 닿기 전에 엉덩이나 다리를 태그하는 기술을 익혔다. 야구의 기본기가 바뀌는 중이다.
비디오 판독의 ‘나비효과’는 엉뚱하게 감독의 리더십에 영향을 미쳤다. 뉴욕타임스의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은 최근 “야구에서 감독 퇴장의 재미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2011년에는 아웃·세이프 판정에 거세게 항의하다 퇴장당한 감독이 50명이나 됐는데, 비디오 판독 도입 이후 크게 줄었다. 2019년에는 1명밖에 되지 않았다.
감독 퇴장은 ‘억울함 호소’를 넘어선다. 리더가 나서서 팀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작동했다.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명장 보비 콕스 감독은 1년에 12번이나 퇴장을 당했다. 통산 퇴장 161회로 압도적 1위다. 비디오 판독은 야구 감독의 중요한 리더십 발휘 장치를 없앤 셈이다. 감독 취임 후 매년 최다 퇴장을 자랑하는 뉴욕 양키스 에런 분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ABS가 도입되면 진짜 퇴장이 사라질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절대 그럴 리 없다. 어떻게든 (퇴장당할 구실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규칙 변화가 가져온 다소 심각해 보이는 결과도 있다. 야구는 ‘초말’로 공격 순서가 바뀌는 종목이고, ‘말 공격’을 하는 홈팀이 살짝 유리하다. 2024시즌 메이저리그 홈팀의 승률은 52.2%, 원정팀 승률은 47.8%였다. KBO리그는 홈 51.1%, 원정 48.9%를 기록했다. 그런데, 연장전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메이저리그는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10회부터 2루에 주자를 두고 경기하는 ‘고스트 러너’ 제도를 도입했다. 승부치기라고도 부른다. 별 영향이 없겠거니 싶었는데, 2020년 제도 도입 이후 연장전 통산 홈팀의 승률이 49.3%로 떨어졌다. 도입 이전에는 정규 경기와 연장 경기 사이에 홈팀 승률 차이가 거의 없었다. 여러 추정 중 득점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홈팀이 마무리 투수를 쓸 타이밍이 애매해진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대통령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온갖 공약이 쏟아진다. 당장은 혹해 보이지만,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정책 도입에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야구는 많은 걸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