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을 일일생활권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산업화 이후 계속된 우리 국토 계획의 목표였다. 교통과 산업의 발전으로 우리는 그 목표에 도달했다. 하지만 모든 국토에 사람과 돈이 원활하게 혈액처럼 순환할 것이라는 장밋빛 꿈과 달리 극심한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비수도권은 비수도권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수도권 과잉과 지방의 공동화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점차 생명력이 약해지고 있다.
교통과 유통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집적’의 가치를 더 높였다. 수도권으로 최고 수준의 인재와 네트워크·유통·서비스·문화·의료 혜택이 모여들었고 집적의 시너지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져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키우고 있다.
가끔 하루 시간을 내 서울에 최상의 것들을 힘들게 누릴 수 있으나 매일의 일상에서 수도권의 인프라를 누릴 수는 없는 ‘전국 일일생활권’이라는 애매한 거리감은 수도권 쏠림을 가속화한다.
‘딥테크’로의 산업구조 변화도 균형 발전을 더욱 어렵게 한다. 우리 산업 현장은 공장의 제조 벨트에서 각 대학과 기업의 연구소 중심으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은 최상의 인프라가 구축된 수도권으로 모여들고, 기업들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다시 수도권으로 모여든다. 서비스업 자본과 노동자도 사람과 돈이 모이는 곳을 따라서 모인다.
노동자들은 성장의 기회를 찾아 대도시로 모여든다. 일자리 시장은 고강도·장시간 근무를 하며 끝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살아남는 소수의 ‘탐욕스러운 일자리(Greedy work)’와 숙련 성장이 어려운 저임금 일자리로 양분화되고 있다. 게다가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는 인공지능(AI) 및 로봇과 경쟁하며 점점 소멸의 위험에 시달린다. 청년들은 성장의 기회를 갖고 살아남기 위해 수도권의 끄트머리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린다.
이재명 대통령의 ‘5극 3특’ 구상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그랜드 플랜이다. 실질적으로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각 광역 대도시권을 발전시키고 내부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것 뿐만 아니라 광역 생활권 사이의 연결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광역 대도시권이 산업적·일상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분리된다면 각각 더 집적이 강한 광역권인 수도권으로의 쏠림을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인근 광역 생활권 사이를 ‘데이트 생활권’으로 만들어야 한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인근 광역 생활권의 연인과 데이트하고 각자 귀가할 수 있을 정도의 연결성이 확보돼야 한다. 서울과 대전의 직장인이 연애를 하고, 광주와 대구가 더 밀접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대구와 부산에서 각각 일을 하는 부부가 부담 없이 출퇴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산업적 분업이 가능하고 노동자들도 새로운 광역권으로의 이동을 덜 부담스러워 할 수 있다. 국토 전체를 메가시티의 선형 연계인 ‘메가리전’으로 키워 산업 강국 대한민국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전국을 데이트 생활권으로 묶으려면 국토의 중심인 충청권 메가시티의 역할이 중요하다. 단순히 모든 지역을 고르게 발전시키는 차원이 아니다. 충청을 메가리전의 허브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전통 제조업 역량, 호남의 신재생에너지와 바이오 역량, 수도권의 정보기술(IT)과 금융 역량이 충청 허브 권역을 거쳐 전국으로 흘러야 한다. 세계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밀접한 연결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