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단체가 성분명처방 의무화와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 검체검사 위수탁제도 개정 등을 저지하기 위해 '범의료계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한다던 계획을 보류했다. 오는 25일로 예고했던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잠정 연기하고 대한의사협회(의협) 대의원회 임시총회에서 투쟁 방법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의 대응이 엇갈리면서 투쟁 동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최근 의료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은 16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최근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한의사를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에 포함해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하고 위험한 시도"라며 이 같이 밝혔다. 김 회장이 의료현안 관련 정례 브리핑을 직접 주재한 건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달 간담회가 열렸던 7월 이후 3개월 여 만이다.
한의계는 올해 초 수원지법이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환자 진료에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의사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 판결과 같은 무죄를 선고한 것을 계기로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전면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해당 판결은 형사 처분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일 뿐,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합법화하거나 정당화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한의계가 법원의 판결을 자의적으로 왜곡해 엑스레이, 초음파 등 의과 진단장비 전반으로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법안을 발의해 특정 직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본분을 망각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김 회장은 또한 검체검사를 위탁하는 병의원과 수탁업체가 검사 비용을 각각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서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분야별 당사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상이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으로 심층적 검토와 충분한 협의가 요구되는 만큼, 현재 구성된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개선협의체'에서 합리적인 개선 방향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수급불안정 의약품의 성분명처방을 허가하는 약사법·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오는 17일 불법 대체조제 피해 신고센터 접수사항을 고발함으로써 철회를 끌어내겠다고 예고했다. 성분명 처방 강제화의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홈페이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홍보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대국민 설문조사 등도 준비 중이다.
김 회장은 "개별 의원들의 입법 역량도 있겠지만 의료법의 존재 이유도 돌아봐야 한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존재하는 의료법인데, 그것을 어겨 가며 건강이 증진될 수 있는지 입법자들이 봐야 한다"며 "의료 사태가 진정된 지 2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의료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제2의 의료사태'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국의사대표자대회 철회와 관련 '집행부가 투쟁 동력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대의원회 임시총회와 대표자대회를 함께 진행하기 어려워 잠정 연기한 것뿐, 철회는 아니다"라며 "대의를 하나로 모아 강력한 투쟁 동력을 만들기 위한 단계"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