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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바티칸에 118명의 추기경이 한자리에 모였다. 교황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회의 80세 미만 추기경이 다 모인 것이다. 지금 현실의 야기가 아니다. 5일 개봉하는 영화 ‘콘클라베’ 얘기다.
‘콘클라베(Conclave)’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라틴어로 ‘함께’라는 뜻의 ‘cum’ 과 열쇠라는 뜻의 ‘clavis‘ 에서 유래한 말로 ‘열쇠로 잠근 방’을 의미한다. 교황 선종 시 선거인단인 추기경들이 투표로 새 교황을 뽑을 때까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생활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실화 바탕은 아니지만 세상에선 알 수 없던 비밀 투표 현장을 긴장감 있게 그린 스릴러물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차기 교황 선거를 이끄는 추기경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다. 평소 존경했던 교황을 갑자기 떠나보낸 그는 애도할 틈도 없이 콘클라베 진행을 떠맡았다. 더구나 그에겐 말 못할 사연이 있다. 최근 “기도에 어려움을 겪어온” 그는 단장직을 사임하고 바티칸을 떠나려 했으나 교황의 반려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그는 새 교황 선거의 위원장 역할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선거를 최대한 올바르게 이끌고자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선거는 궁극적으로 ‘자리다툼’일진대 윤리적인 선거는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까. 콘클라베가 시작되자 로렌스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이제 그의 눈에 새 교황 후보들은 모두 의심스럽고 철저하게 ‘검증돼야 할’ 대상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다. 외부와 차단돼 후보에 대한 사소한 검증 자체가 도전된 환경에서 그는 여기저기서 속출하는 의혹을 파헤치고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 영화가 음모와 배신이 이어지는 추리극처럼 펼쳐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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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과정에선 진보와 보수 진영 후보 사이의 대립도 첨예하다. 진보주의자 벨리니 추기경(스탠리 투치)은 보수파 규합을 막아야 한다는 목표가 절실하다. 반면 “교회가 진보주의에 의해 잠식돼 타락했다”고 주장하는 보수주의자 테데스코 추기경(세르조 카스텔리토)은 교회를 옛날처럼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첫 흑인 교황에 도전해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 나이지리아 출신의 아데예미 추기경(루시언음사마티)도 있다.
영화는 종교 드라마와 정치 스릴러 사이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빼어난 영상미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고풍스러운 교회를 배경으로 붉은색 제복을 입은 추기경 무리를 담은 장면은 완성도 뛰어난 영상 작품 같다. 이 모든 장면은 이탈리아의 영화 스튜디오 시네시타에서 촬영됐다.
한편 투표 과정에서 드러나는 여러 사건은 교회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대변한다. 동성애와 낙태, 그리고 여성의 권리 등 풀어야 할 과제도 그중 하나다. 결국 작은 반전으로 이어지던 드라마는 충격 요법에 가까운 마지막 반전으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전한다.
영화는 정치 칼럼니스트였던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의 에드워드 버거 감독이 연출했다. 최근 영국 아카데미상인 바프타( BAFTA)에서 최우수 영화상 등 4개 부문 상을 받았으며, 오는 2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특히 콘클라베 단장 역을 맡아 열연한 파인스가남우주연상을 받을지 주목된다. 한편 수녀 아다녜스 역을 맡은 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존재감도 남다르다. 상영 시간 120분 중 겨우 7분 51초 동안 등장하지만 강렬한 연기로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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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의 메시지는 자신의 신앙과 교회에 대한 의구심으로 고뇌하는 로렌스의 모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확신이 가장 두려운 죄이며, 통합과 포용을 방해하는 강력한 적"이라는 그의 극 중 대사는 극단적인 믿음과 반목, 배신으로 오염된 오늘날 정치 현실에 대한 통렬한 일침으로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