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미국은 대일(對日)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자동차를 표적 삼아 일본 측에 수출규제 등을 거세게 압박했다. 보복을 우려한 일본은 1981년 “1984년까지 대미 수출 대수를 연 168만 대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당초 기한을 훌쩍 넘겨 1994년까지 지속됐다. 미일 통상 마찰 이후 일본 자동차 업계는 꾸준히 미국 현지화를 진행했다. 혼다가 1982년 오하이오주에서 생산을 시작했고 도요타는 1984년 캘리포니아주에 미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 공장을 지었다. 현지 생산을 통한 판매 강화 전략이 성과를 거두면서 일본 차의 미국 의존도는 급속히 높아졌다.
과도한 미국 편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일본 차에 부메랑이 됐다. 미국 시장의 수요가 얼어붙으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혼다·닛산 등은 이를 타개하려고 신흥 시장으로 눈을 돌렸지만 품질 저하, 과잉투자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결국 신규 시장 개척에 실패한 일본 차는 대형차 중심으로 고수익이 보장되는 미국으로 유턴했다. 2023년 영업이익에서 미국 등 북미 지역 비중은 혼다 45%, 닛산 70%, 마쓰다 61%에 달했다. 도요타도 지난해 판매량 1015만 대 중 23%인 233만 대를 미국에서 팔았다.
일본 차 업계가 미국발(發) 관세전쟁의 직격탄을 맞아 다시 위기를 맞았다. 요미우리신문은 14일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일본 완성차 회사 6곳(도요타·혼다·닛산·마쓰다·미쓰비시·스즈키)의 올해 영업이익이 2조 엔(약 19조 2000억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차가 다중위기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대응이 뒤진 마당에 중국 차의 도전과 미국의 고율 관세 압박 등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다중위기는 프랑스 철학자 에드가 모랭이 1990년대 소개한 개념으로 여러 위기들이 한꺼번에 닥쳐 더 큰 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우리 차 업계도 일본이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