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라며 자살예방 문제에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 관심을 표명한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자살예방은 어느 한 부처나 전문가 집단의 몫이 아니다. 보건의료·복지·심리·교육·고용·주거·법률 등 사회 전 부문이 결합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최고 정책결정자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포괄적 해법이 불가능하다.
빈곤·고용불안 등 사회적 요인 커
개인 문제로 보면 정책 실패 반복
범정부 협력 체계로 대처 나서야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은 다섯 차례의 국가 차원 자살예방 정책을 추진했지만, 단 한 번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제1차 계획은 2010년까지 자살률을 인구 10만 명당 18명으로 낮추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31.2명에 달했다. 제2차 계획 역시 2013년 목표 20명에 현실은 28.5명, 제3차 계획은 2020년 목표 20명에 결과는 25.7명에 그쳤다. ‘행동’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대를 모았던 국가행동계획은 2022년까지 17명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 수치는 25.2명이었다. 다섯 번째 계획이 시작된 2023년에도 자살률은 오히려 27.3명으로 상승하며, 한국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책 설계 자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는 2018년 런던에서 열린 OECD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자살예방정책을 발표했던 순간의 복잡한 심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발표 직후 많은 외국 전문가들이 한국의 훌륭한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한국 특유의 서류상 완성도임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지난 20년은 바로 그 ‘종이 위의 완벽함’이 실행력 부재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시간이었다.
이처럼 목표 달성에 번번이 실패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목표 설정의 비과학성이다. 자살의 원인과 현실, 그리고 변화하는 맥락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단순한 수치만 제시한 것은 공허한 주먹구구식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둘째는 실행의 부실이다. 예산·인력·인프라·데이터 공유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담 확대와 캠페인에 머물렀고, 자살을 부추기는 구조적 위험 요인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목표는 비현실적이었고, 실행은 무기력했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한 일시적 접근도 큰 문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정부의 정신건강 예산 증액이다. 당시에는 3000억원 규모의 투입 계획설까지 거론됐고, 정부는 명목상 약 750억원을 증액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장기적 전략 없이 단발적으로 늘린 예산은 오히려 정책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위협할 수 있기에 필자는 우려를 표했다. 실행 전략과 집행 계획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무엇보다 인프라와 인력 확충 없이 예산만 늘린다고 해서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심각했다. 나아가 사회적 비극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뒤따랐다.
자살예방정책은 단기적 성과 지표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에서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연계된 안전망 구축, 장기간에 걸친 인프라 확충, 전문 인력 양성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자살률 감소는 공허한 약속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재작년 필자는 정부에 고용 불안, 주거 취약성, 정신건강 현황 등 자살과 직결된 지표들을 포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한 부처의 소관을 넘어선다”는 거절이었다. 바로 그 지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자살은 결코 한 부처의 과제가 아니며, 범정부적 협력과 전방위적 조정 없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자살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경제·사회·문화적 맥락이 함께 고려될 때 비로소 근본적 해결이 시작될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의 사회적 지지 수준, 최고의 노인빈곤율, 높은 가계부채율 등 여러 지표에서 위험 신호를 보인다. 여기에 교육과 노동 전반을 지배하는 과도한 경쟁 구조와 취약한 사회안전망까지 겹쳐 있다. 이러한 조건이 함께 개선되지 않는 한 자살률만 낮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국민의 생명권과 행복권을 보장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헌법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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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코리아 불평등해소 분과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