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인재 확보야”

2025-08-21

최근의 딥시크 충격은 많은 사람에게 중국의 인공지능(AI) 굴기를 실감 나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AI 분야에서만 기술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우리나라의 제조업 대부분이 중국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반도체처럼 한국이 가까스로 격차를 유지하는 분야도 있지만, 과거 ‘대륙의 실수’라고 웃어넘기던 일이 이제는 ‘대륙의 실력’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막강하던 미국 제조업은 일본에 주도권을 넘겨주었고, 일본은 디지털 전환 시대에 한국에 많은 분야를 내어주었는데, 이제 한국이 중국에 제조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조업의 우위를 빼앗긴다면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제조업 경쟁력은 R&D가 좌우

우수한 이공계 인재 확보 필수

인구 감소와 해외 유출로 위기

범국가 차원 종합대책 있어야

그러면 중국의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아마도 모범답안은 기술력 향상을 통해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하는 것일 것이다. 한국 조선업이 LNG 운반선 등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여 중국의 물량 공세에 대응하는 일이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술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즉 제조업 경쟁력은 연구개발 인력의 우수성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LCD 산업 주도권이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1990년대까지 LCD 분야의 기술력이나 생산량에서 일본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강이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 한국기업들이 LCD 산업에 대담하게 투자하여 일본을 추월하게 된다. 당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였던 한국 기업의 경영자에게 “무슨 자신이 있어 그런 위험한 투자를 단행할 수 있었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분의 대답은 “일본의 기술자들을 보니 모두 노령화되고 있어서 한국의 패기 있는 젊은 연구개발자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최고 경영자의 비전’ 같은 대답을 예상하던 필자에게는 기술자의 중요성을 짚은 인상 깊었던 답변이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의 상황이 당시 일본 상황과 비슷해져 가고 있다. 유능한 연구개발 인력은 노령화하고, 젊은이들은 과학기술 분야를 기피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AI 3대 강국 도약’이니 ‘혁신으로 도약하는 산업 르네상스’ 같은 국정과제는 공염불이 되기에 십상이다.

먼저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자. 첫째는 인구 감소다. 인구학자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청년 인구 감소에 따라 앞으로 5~10년 후에는 소위 SKY 대학도 이공계 대학원 학생 수를 채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미 서울대 일부 이공계 전공은 정원을 겨우 채우는 형편이다.

둘째는 극심한 ‘의대 선호’ 현상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학생이 적성과 관계없이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에 들어가려고 하고, 심지어 사교육 시장에 ‘초등학교 의대 준비반’이 생기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쫓아 서울대 이공계에 들어간 학생조차 ‘의대 입학에 실패한 루저’라는 주위의 시선이 있어 자긍심이 꺾인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기술자를 최고의 직업으로 여기며,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교육 시스템을 통해 뛰어난 이공계 인재를 발굴하는 중국과 너무 다르다.

셋째는 좋은 이공계 일자리의 부족이다. 지금 국내의 이공계 전문가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거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하면 2013년부터 10년 동안 해외로 나간 이공계 석박사가 9만6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과거에는 외국에서 학위를 받더라도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거꾸로 된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2019년 실리콘밸리에서 접한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서울대는 고(故)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님이 쾌척한 500억원을 활용해 인공지능 연구소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 과학자들에게 귀국을 권유하였더니 50여 명 참석자 중 단 1명만이 관심을 보였다. 연봉이나 연구 자율성 등 근무 조건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지금 우리나라는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고 국내에서 활용하는 데 많은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와 한국에서의 정착 지원, 대학원생의 경제적 지위 보장, 그리고 다양한 능력을 인정하는 대입제도 등이 제안된 바 있다. 또한 배출된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성과에 따른 보상 체계 마련, 자유로운 연구 환경, 예측 가능한 정부 정책 등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부 여러 부처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해결할 수 있고,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선거에 활용했던 구호처럼, “문제는 인재 확보야, 바보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오세정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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