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기후시대] 과수원도 축사도 폭설에 폭삭…모든 것이 주저앉았다

2025-05-22

“그런 큰 눈은 평생 처음 경험했습니다.”

경기 평택시 진위면에서 7933㎡(2400평) 규모로 방울토마토와 오이농사를 짓는 정병헌씨(67)는 2024년 11월27∼28일 내린 폭설을 다시 떠올리며 “끔찍했다”고 말했다. 하룻밤 사이 내린 눈으로 두곳에 세운 연동 비닐하우스 12동이 모두 붕괴됐기 때문이다.

정씨는 “기록상 39㎝가 왔다고 하는데, 실제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은 60㎝가 넘었다”며 “거기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이어서 피해가 더 컸다”고 설명했다. 정씨를 비롯한 농가들은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을 녹이기 위해 난방기를 틀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녹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빨랐고 눈이 녹았다 얼며 무게가 더해져 피해를 키웠다.

특히 연동하우스의 피해가 컸다. 단동은 눈이 일정 수준 이상 쌓이면 옆으로 미끄러져 떨어지지만, 연동은 하우스간 연결 부분인 골에 눈이 모여 무게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정씨는 채소 비닐하우스가 밀집한 이 지역의 연동하우스 대부분이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회고했다.

피해는 예상 못한 곳에서도 발생했다. 경기 화성시 남양읍에서 3966㎡(1200평) 규모로 사과농사를 짓는 임재순씨(68)의 과수원을 비롯해 몇몇 사과농가의 과수원이 습설에 무너졌다.

새 피해를 막고자 과수원 위로 쳐놓은 방조망에 쌓인 눈더미가 전체 구조물을 주저앉히고 그 위로 눈이 더 내려 모든 것을 덮었다. 과수원이 평지처럼 변했던 것이다. 방조망의 그물 간격이 2X2㎝로 촘촘해 습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면서 피해가 커졌다. 당시 이틀간 화성지역에는 31.6㎝의 눈이 쏟아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발생한 폭설로 시설하우스 773㏊, 과수시설 482㏊, 인삼시설 1130㏊ 등 농업시설 2396.7㏊, 축사 129㏊, 농작물 476㏊, 가축 102만2000마리의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농업시설 피해는 사상 최대의 농업시설 피해를 냈던 2018년의 680㏊보다 3.5배가량 커 피해 기록을 경신했다. 지역적으론 경기지역 피해가 가장 컸고 충북·강원·충남·전북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피해 발생이 끝이 아니었다. 눈으로 주저앉은 시설하우스나 축사·과수원의 시설물을 철거하면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잔해물을 치우는 일부터 벽에 부닥쳤다.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뒤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폐기물을 처리해주기로 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폐기물 처리에 애를 먹는 농가가 많다.

임씨는 “정부와 지자체가 철거된 잔해물과 폐기물을 치워주겠다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다 비닐류만 수거해갔다”고 밝혔다. 임씨의 과수원엔 아직도 치우지 못한 잔해물들이 남아 있다.

축사가 붕괴된 이윤철씨(45·강원 횡성군 둔내면)도 “하루에 70만∼80만원 하는 덤프트럭 비용을 고려하면 바닥 철거에만 500만원이 들어가게 생겨 손을 못 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란과 분쟁도 끊이질 않았다. 정씨는 “시설하우스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이 면적을 기준으로 하고 상한액이 5000만원으로 제한되다보니 내부에 고가의 난방시설이나 제어시설을 설치했던 농가들은 상대적으로 불만이 많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내 계산으론 폭설 피해 규모가 3억원가량 되는데 지원받은 재난지원금이 900여만원에 불과했고, 그것도 하루에 5090원부터 220여만원까지 27차례로 나눠 통장에 입금됐다”며 “재난지원금 지급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명세라도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씨도 “200평 기준으로 축사를 다시 짓고 급이기·선풍기·환풍기 등 부대 설비까지 갖추려면 2억원이 훌쩍 넘게 드는데 재난지원금은 1600만원뿐이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씨는 사육마릿수를 줄이는 길을 택했다. 헐값에 30여마리의 젖소를 처분한 후 지금은 예전 사육마릿수의 절반가량인 40마리만 키운다. 최근엔 아예 업종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농민들은 “극한기후로 습기를 머금은 폭설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대응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농민들은 폭설 피해 복구 과정에서 제기된 재난복구지원금과 농작물재해보험의 현실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택·화성=최상구, 횡성=이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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