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러시아가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에 대한 모라토리엄(유예 조치)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했다.
빗장을 풀어 해당 사거리의 미사일을 언제든 서방 국가들과 미국 동맹국을 향해 전진 배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 외무부는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미국산 중·단거리 지상발사 미사일이 유럽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실제로 배치되는 상황으로 전개됨에 따라, 유사 무기의 일방적 유예 조치를 유지할 조건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2019년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한 이후 이어온 러시아의 상호 배치 금지 입장을 뒤집는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이 먼저 배치하지 않는 한 자국도 중거리 핵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지난해 12월 이미 "미국과 나토의 전략적 불안정 조치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모라토리엄 철회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종료한 것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전략적 움직임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영문으로 이번 조치는 "나토 국가들의 반러 행보의 결과이며, 이는 새로운 현실"이라며 "앞으로의 조치들을 각오하라"고 예고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푸틴 정부 내 가장 강경파 고위 당국자다.
그는 최근 핵 보유 강대국들 간의 전쟁 위험성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에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잠수함 2척을 "적절한 지역"으로 이동시킬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 트럼프와 푸틴, 모디의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최근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도, 푸틴 대통령이 좀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하지 않으면서 러시아를 향한 미국의 경고 수위가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오는 8일까지 우크라이나와의 휴전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뿐 아니라 러시아와 교역하는 국가에도 100% 관세(세컨더리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러시아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이자,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큰 성의를 보이지 않은 인도를 향한 압박도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인도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구매한 후 재판매해 이익을 얻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같이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인도)은 러시아 탓에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서 인도가 미국에 지불해야 할 관세를 대폭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선언한 우크라이나 정전 합의 시한(8월8일)이 다가오면서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압박, 나아가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에 대한 경고음은 당분간 더 커질 전망.
여기에 맞서 러시아는 참아왔던 중·단거리 핵 미사일의 빗장을 풀었다며 맞불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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