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내 고향 마을에 뜨내기로 들어와 잠깐 살다 떠난 째깐이 할매 이야기다. 한 4~5년 살다 갔나?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빈 몸으로 들어와 빈 몸으로 떠났다.
째깐이 할매는 모든 게 다 작았다. 키도 작고 몸피도 작고 얼굴도 작고 눈코입도 작고, 말하기 좀 그렇지만 가슴도 작았다. 옆집 박센떡과 나란히 서 있으면 작은 가슴이 더 도드라졌다. 박센떡은 째깐이 할매처럼 자식이 넷인데도 가슴이 어찌나 풍성한지 늘 저고리가 벌어져 더러는 허연 젖무덤이 아슬아슬 볕 구경을 하기도 했더랬다. 가슴만 풍성한 게 아니라 몸 전체가 풍성했던 박센떡은 고된 일 따위,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뚝딱뚝딱 해치웠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런 것처럼 보였다. 박센도 힘깨나 쓰는 일꾼이라 그 집 살림은 하루가 다르게 윤택해졌다. 애들도 푸둥푸둥 살이 올랐다.
째깐이 할매네 아이들은 다 엄마 닮아 째깐한 데다 비루먹은 개처럼 볼품이 없었다. 안 그래도 조그만데 송곳 하나 꽂을 데 없는 집안 형편을 일찍 알아챈 탓인지 노상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없는 듯 가만가만 저희끼리 뭉쳐 다녔다. 아이들이 어머니 닮아 몸 재고 부지런한 게 째깐이 할매로서는 유일한 축복이었다. 째깐이 할매는 남편 복도 지지리 없었다. 우리 큰아버지 같은 주정뱅이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지 남편은 도통 바깥 걸음을 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친 남편은 뒷짐을 진 채 농번기에나 농번기 아닌 때에나 좁은 고샅길을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몇년 한마을에서 살았는데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나 종종걸음 하는 촌에서 유일하게 유유자적하던 그 걸음만이 기억날 뿐이다.
어느 날인가, 좁은 시골 마을이 시끌벅적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박센이 낫을 들고 째깐이 할매 남편 뒤를 쫓는 장면이다. 박센 손에는 잘 갈린 낫이 들려 있었다. 그 낫에 봄 햇살이 쏟아져 시퍼렇게 빛났다. 그날 이후 낫은 내게 농기구가 아니라 흉기로 각인되었다. 그 공포를 이겨내게 한 건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는 째깐이 할매 남편의 날랜 걸음이었다. 저 사람도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구나, 나는 사촌 언니 집 담장에 냉큼 올라앉아 두 남자의 목숨을 건 달음박질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끝은 보지 못했다. 째깐이 할매 남편은 절대 잡히지 않았다! 이 사달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른다. 다만 박센네와 째깐이 할매네는 그 뒤로도 한동안 아래윗집으로 살았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아내가 외간남자를 보았다고 해도 아이 넷 어머니를 쫓아낼 수 없었을 터이고, 동네 망신스러워 이사를 가자 해도 돈 한 푼 없이 갈 데가 막막했을 터이다. 살기 위해서는 견딜 수 없는 것도 견뎌야 하는 법이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 무렵이었을 테지. 그날도 나는 사촌 언니네서 놀고 있었다. 박센떡 고함이 들리기에 담장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박센네 마당에 박센떡과 째깐이 할매가 대치 중이었다. 아니, 대치 중이라고 하기에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박센떡은 양 허리에 척하니 손을 얹고는 장수처럼 우뚝 서 있고 째깐이 할매는 그 앞에서 야단맞는 아이처럼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워치케… 워치케, 인두겁을 쓰고 그럴 수가 있다요?”
박센떡은 가슴을 쫙 펴고는 째깐이 할매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어깨를 뒤로 젖히자 앞섶이 벌어지면서 조선호박같이 둥그런 젖무덤이 부끄럼도 없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거이 내 죄요? 이녁 죄제. 서리 맞은 산수유 두 알이 살가죽에 달랑거링게 오만 정이 뚝 떨어진다는디 나가 워쩔 것이요?”
나는 째깐이 할매가 박센떡 머리카락이라도 휘어잡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째깐이 할매는, 키도 작고 간도 작았던 나의 째깐이 할매는,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양 부럽디부러운 눈으로 봄볕을 만끽 중인 박센떡의 젖무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순간 째깐이 할매는 그 가슴에 홀린 남편의 죄조차 이해하고 만 것 같았다. 할매의 몸은 그날따라 더 작아 보였고, 점점 더 작아져 이내 땅속으로 꺼져들 듯했다. 그날 할매의 설움은 나만 아는 설움, 작아도 그 작은 몸으로 자기 앞에 닥친 모든 고통을 기꺼이 짊어졌던 째깐이 할매가 나는 늘 그리웠다. 아마도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지. 그 슬픔은 어디로 갔으려나. 자식들에게 흘러들지는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