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시민에게 다양한 정보 접근 및 창의적 표현 권리를 진전시켰고 민주주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반면에 디지털 기술은 각종 범죄와 혐오를 통해 사회적 분열을 강화하기도 한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현대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되었지만, 반대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경제 시대에 디지털 환경은 세계 문화정책의 핵심 기둥이 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촉진함으로써 문화 상품 생산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기업과 정부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이유로 디지털 환경 구축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상위권인 한국에서 시민의 문화적 권리 증진을 위해 디지털 기술과 문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디지털 기술과 디지털 문화
디지털의 어원은 손가락(digit)이다. 인류의 여명기에 숫자라는 정보 전달을 위해 손가락이 사용되었는데, 이때 ‘접었다’ ‘폈다’하는 손가락 수에 따라 그 숫자의 정보가 달라진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은 숫자로 표시되는 시계처럼 정보처리 방식이 분절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은 모스부호처럼 전기의 연결 상태를 ‘1’로, 단절 상태를 ‘0’으로 지정하기 때문에 손가락 셈법(10진수)보다 매우 안정적인 셈법을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정보 저장과 처리를 가능하게 만들어 AI, 빅데이터, 5G/6G라는 너무나 익사이팅하고 편리한 디지털 세상을 열었다.
디지털 기술을 마음껏 활용하는 디지털 세상은 디지털 문화로 채워진다. 디지털 문화는 디지털 기술, 즉 디지털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형성되는 문화를 말한다. 디지털 정보는 아날로그 정보에 비해 복제성, 변형성, 전달성이 강하다. 따라서 디지털 문화는 기존의 지식과 경험, 이미지 등이 쉽게 복제되고 가공될 수 있기에 대중의 오락적 욕구와 참여의식과 실천을 강화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개인의 연대)은 기업이나 국가에 맞서는 힘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반대로 디지털 문화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차별과 혐오를 강화하는데, 인터넷 밈(meme)은 재미를 숙주로 삼아 혐오-프레임을 구축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유네스코의 고민
유네스코는 문화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해 디지털 접근성과 디지털 리터러시,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불균형적 지형, 지속 가능하지 않은 보수 체계 등의 개선을 통해 디지털 격차 해소를 강조한다. 디지털 정보는 그 접근과 이용, 그리고 변형이 수월하기에 전문가뿐만 아니라 누구나 쉽게 문화 상품을 창조할 수 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디지털 환경 구축은 디지털 시대 문화적 권리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대가 된다. 유네스코의 디지털 환경 개선 요구는 문화창조 분야의 생산성 향상과 이것의 토대가 되는 시민 참여와 거버넌스 촉진 정책이다.
그런데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을 ‘돼지털’로 듣는 세대 차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노인 계층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의 낮은 디지털 활용률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격차는 고가의 디지털 사용 비용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 주요 국가들의 모바일 데이터 1기가바이트 구매비용은 월 급여의 20% 이상이다. 한국 역시 디지털 데이터 비용이 1기가당 5.01$로 세계 평균보다 2배가량 비싸다. 디지털 기술 및 문화 격차는 결국 생각의 격차, 경제의 격차 등 사회적 격차를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조건이라면 문화를 통한 민주주의와 산업화 역시 요원해질 수 있다.
기술만능주의와 디지털 문화시민권
기술만능주의는 인간성을 사라지게 한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마부를 사라지게 했고, ATM기는 은행원을 쫓아냈다. 이렇게 보면 기술 혁신은 해고를 불러오는 게 당연한 일 같다. 하지만 기술이 실현되자면 그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장비 만드는 노동, 장비를 디자인하는 노동, 재료와 상품을 공급하는 노동, 유통하는 물류 노동 등 수많은 노동과정이 더해져야 한다. 따라서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신화(神話)이며 착취의 다른 말일 수 있다. 쿠팡의 ‘총알 배송’ 신화는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e-커머스’가 아니라 ‘총알 배송’을 위해 새벽까지 달리는 노동자가 있기 때문이고, 거대 디지털 기업의 신화는 재미를 얻기 위해 콘텐츠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도 돈을 주고 하는 플랫폼 사용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착취가 정상화되는 사회다. 반인륜적인 디지털 성범죄나 사기는 승자독식의 자본주의가 익명성과 변형성이라는 디지털과 만나 만들어진 괴물이다. 어느 시대나 성범죄나 사기 범죄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혐오는 당선을 위한 정치권에 의해 정당화되고, 도파민(신경조절물질) 자극과 같은 비윤리적 기술은 빅-테크 기업에 의해 칭찬받는다. 문화가 가치관을 토대로 쌓아 올려진 것이라면 오늘날 디지털 문화 왜곡은 신자유주의 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적인 가치관으로 자리하게 만든 정치와 기업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디지털 문화시민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디지털 환경 구축은 디지털 접근성보다 디지털 공공성 강화 및 디지털 사적 검열 철폐, 알고리즘 규제, 문화의 디지털화 과정에서 무료 노동의 근절 등 참여와 포용을 넘어 평등한 분배에서 찾아야 한다.
이강민 사단법인 울산민예총 정책위원장, 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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