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런티어가 불붙인 '대학 무용론'…"창조적 질문의 場으로 바꿔야"[첨단산업전쟁 위기의 대학]

2025-11-24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팰런티어는 “대학은 더 이상 신뢰할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다”며 고졸자 대상 ‘메리토크라시 펠로십’을 운영하고 있다. 고졸 학생 20여 명을 선발해 넉 달간 월 5400달러의 급여를 제공한 후 성적에 따라 정직원으로 채용한다. 대학 교육 자체를 대체하려는 시도다.

이 같은 ‘대학 무용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 대학의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5년 우리나라 대학의 경제적 측면 글로벌 경쟁력 순위는 58위다. 홍콩(9위), 대만(14위), 중국(16위)에 비해 크게 뒤처진다.

24일 서울경제신문이 ‘AI시대, 대학의 위기론’을 주제로 14개 대학 총장과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위기를 인정하면서도 대학만의 고유 가치를 강조했다. 고창섭 충북대 총장은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질문을 창조하는 곳’”이라며 “팰런티어를 비롯한 빅테크의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를 위해 대학과 학과의 칸막이를 허무는 규제 완화와 성과와 연동된 과감한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 총장들의 고언이다.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위기의 원인을 재정 문제로 진단했다. 유 총장은 “오랜 등록금 동결로 대학은 우수 교수 유치와 연구 인프라 개선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며 “막대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싱가포르 대학이나 기부금 규모가 큰 영미권 대학에 비해 한국 대학은 재정 여력에서 밀려 인재 유출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최준규 가톨릭대 총장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최 총장은 “많은 대학이 수직적·관료적 구조에 갇혀 운영 혁신이 연구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AI 시대 글로벌 대학 경쟁은 ‘누가 더 큰 연구 생태계를 구축했느냐’로 판가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은 “대학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하고 연구와 교육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각 대학이 고유한 강점을 살려 특화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총장들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대학의 고유 영역을 강조했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은 “AI가 삶의 전 영역에 스며든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다양한 시각 및 전망을 융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소통 플랫폼이 꼭 필요하다”며 “대학은 이 플랫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재원 부산대 총장은 “AI 도래로 현재 대학 교육은 변곡점을 맞았다”며 “AI가 대체 못하는 사람 간 관계성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AI 시대에 인간만의 고유성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고유의 역량인 리더십·윤리·소통·협상과 같은 능력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며 “향후 대학은 AI 시대의 위험을 관리하고 미래의 가치를 설계하는 핵심 사회 인프라로서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시연 숙명여대 총장은 “AI 시대 경쟁력은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어떻게 확장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대학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사고력, 통찰, 윤리, 복합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공간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정 한양대 총장은 AI 활용법의 전환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이 총장은 “AI는 단순한 ‘정답 검색기’가 아닌 ‘사고 촉발기’가 돼야 한다”며 “최근 일부 대학의 AI 활용 부정 시험 이슈도 ‘AI를 어떻게 책임감 있게 활용할 것이냐’는 관점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왕준 경인교대 총장은 인재 수요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총장은 “5년 전 산업계에서 코딩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외쳤지만 AI 활성화로 코딩 인력은 이제 필요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라며 “특정 분야만 강조하는 인재 양성에 대해서는 보다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지방 거점 국립대 총장은 “AI가 비행기를 설계해도 설계도의 안전성과 정확성은 사람이 꼭 검증해야 한다”며 “대학을 나와 전문 지식을 쌓은 이들에 대한 ‘양적 수요’는 줄어들지 몰라도 ‘질적 수요’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석환 대진대 총장은 “AI 시대에는 더욱 많은 학습 기회 제공을 위해 대학 간, 지역 간 물리적 칸막이가 없어져야 한다”며 “해방 이후 80년가량 이어져 온 초중고 학제 개편 외에 대학 교육 또한 집단 교육에서 벗어나 개인 맞춤형 교육이 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AI 확산은 결국 대학 양극화로 이어져 대학별 구조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도연 전 교육부 장관은 “AI가 향후 엄청난 역할을 할 것인데 결국 해당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는 대학이 유리할 것이며 이 또한 현재 잘하고 있는 대학 중심으로 진행돼 실력이 없는 대학은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대학은 이제 지식 전달 역할자 역할에서 벗어나 단순 시험문제부터 학생 평가까지 많은 것을 빠르게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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