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감독 인터뷰
경기외곽캠퍼스의 학과통폐합…현실 담은 ‘로코’ <제4차 사랑혁명>
너드, 성소수자, 장애인 캐릭터 … “우리 현실을 재미있게 반영했을 뿐”

서울 대학로의 화려한 캠퍼스, 아름다운 여자주인공과 용기는 넘치지만 어딘가 모자란 남자주인공, 흩날리는 벚꽃잎으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로코)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제4차 사랑혁명>은 논밭으로 둘러싸인 경기도 외곽 캠퍼스가 배경이다. 학과 통폐합으로 만나게 된 모델과 남주 ‘강민학’과 너드한 컴퓨터공학과 여주 ‘주연산’의 첫 만남은 ‘운명’보다는 ‘혐관’(서로 혐오하는 관계)에 가깝다.
독립영화 <은하해방전선>으로 이름을 알리고 시리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서 정치 블랙코미디를 선보인 윤성호 감독이 ‘로코’ <제4차 사랑혁명>으로 돌아왔다. 뻔해 보이는 이야기도 비틀어 색다른 한끝을 만들어내는 그는 꽃무늬 가득한 기존의 로코에서 삭제된 현실을 적극적으로 불러옴으로써 로맨틱 ‘블랙’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웨이브 본사에서 만난 윤성호 감독은 “처음 제안받은 내용은 지금과 정반대였다”고 했다. “모 제작자분이 공대 이야기가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너드 남자 대학생과 슈퍼모델 같은 여학생의 사랑 이야기를 쓰자는 거예요. 그래서 ‘<빅뱅이론>도 20년이 지났는데, 너무 지난 얘기 아니냐’고 말했죠.”
그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말만 해서 사람을 질리게 하는 이공계 남성은 너무 많이 봐왔으니, 그걸 여성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주연산 캐릭터를 만들면서는 미드 <빅뱅이론>의 ‘셸던 쿠퍼’를 참고했어요. ‘셸던이 여자였다면 연애를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었죠”

너드한 주인공이 여성이 됐으니, 자연스레 남주 ‘강민학’은 모델이 됐다. 캐릭터의 성격의 성별만 반전됐을 뿐, 흔한 ‘왕세자와 서민’ 구성을 따랐다. 윤 감독은 “세상 로코의 80%는 왕세자와 평민 플롯이에요. 재벌과 신입사원처럼요. 신기한 로그라인을 말이 되게 만들게 되려면 플롯은 전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잘났지만 뻔하지 않은 남주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남자주인공 상을 골몰했다. “로코의 역사는 세상에 없는 남주를 만드는 일이에요. 고민끝에 인터넷에서 힌트를 얻었죠. ‘자아가 없는데 잘생기고 신체조건 좋고, 내 말을 잘 듣고 (생각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남자’가 이제는 주변에 없는 남자더라고요. 강민학은 흐트러지고 모자란 모습을 보이지만 내 여자를 위해서는 업데이트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윤 감독은 강민학 역을 맡은 배우 김요한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김요한 배우는 대본이 써지지 않아 고민하던 2022년부터 남주로 점찍어둔 인물이었다. “솔직히 (김요한씨는) 연기 천재 같아요. 지금까지 만나본 남자 배우 중에 가장 똑똑해요. 연출진이 놓친 맥락까지 완벽하게 파악해서 연기하더라고요. 바보 역은 바보가 하면 매력 없잖아요. 요한씨가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아 없는 캐릭터를 잘 잡아서 연기해줬죠”
‘로코’이기에 응당 들어가야할 남녀의 사랑 이야기지만, 연출 중 ‘연애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얘기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극중 주연산은 남성에게 관심이 없는듯 행동한다. 하지만 3화에서 주연산과 강민학의 스킨십 장면을 통해 주연산이 남성을 사랑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도록 했다. 윤 감독은 “남자에 관심 없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는 폭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연산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충분히 보여주려 했다”고 밝혔다.

극 초반부에는 두 주인공이 이야기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조연들이 선보일 이야기도 중요한 비중으로 다뤘다. 학과 통폐합을 반대하는 운동권 레즈비언 ‘강동원’, 휠체어를 타고 런웨이를 선보이는 모델학과 회장 ‘임유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소수자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기존 로코에서는 볼수 없었던 남남, 여야 간의 키스 장면이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다양한 소수자성을 가진 캐릭터들에 대해 윤 감독은 “강박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따르려고 하면 재미없고 지루해진다”며 “우리 옆에 있는 것들을 당연한 정도로 재미있게 재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 주변에 있는 소수자의 모습을 그대로 녹였다는 것이다. 임유리역의 경우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모델 활동 중인 인물들을 참고해 만들었다.
소수자들을 재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효율적인 연출을 위해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구했다.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을 함께 제작했던 한인미 감독이 로맨스 장면의 대부분을 찍었다. “여성 서사에 20대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여성이고, 나보다는 젊고, 로맨틱한 연출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며 “저도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있겠지만,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너무 신중하고 조심스럽다는 건 연출자가 그 내용을 잘 모른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만들지 않는 게 맞고요. 저는 주변 창작 동료 중에 충분할 정도로 (소수자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도움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현실사회를 유머러스하게 지적한다는 평을 듣는 그이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담으려 구태여 노력하지 않는다고 했다. 윤 감독은 “의미를 담고 싶긴 하지만, 담으려고 할수록 더 멀어진다”며 “기존 미디어에서 삭제되어 있었던 부분을 충분히 반영해 극을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이런 감독의 선택은 종종 ‘정치적이다’ 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윤 감독은 “학업에 정진할지 취업을 할지 데이트를 할지 선택하는 일은 결국 어디에 에너지를 쓸지를 선택하는, 매우 정치적인 행동”이라며 “사랑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다”고 말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말 처럼, ‘로코’가 정치적으로 보이는 건 일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에피소드로는 13화를 꼽았다. 그는 “이야기의 큰 변곡점이 오는 순간이다. 사실 13화뿐만 아니라 앞의 에피소드는 결말로 향하는 일종의 빌드업이기 때문에 꼭 처음부터 끝까지 봐줬으면 한다. 한국의 청춘 만화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6부작으로 제작된 시리즈 <제4차 사랑혁명은> 웨이브를 통해 매주 목요일 4편씩 공개된다. 첫화는 지난 13일 공개되었으며 오는 20일에는 4~8화가 공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