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법원 “평등법상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트랜스젠더 공동체 ‘우려’

2025-04-17

영국 대법원이 생물학적 여성만이 평등법상 보호받는 여성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생물학적 여성의 권리를 옹호해온 단체와 영국 정부는 명확성을 가져다 주는 판결이라고 환영한 반면, 트랜스젠더 공동체는 우려를 표명했다.

1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대법원은 이날 재판부 5명 전원일치로 영국 평등법상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으로 규정되며 성별 인정 증명서(GRC)를 소지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패트릭 호지 판사는 “이번 만장일치 결정은 2010년 평등법에서 ‘여성’(women)과 ‘성별’(sex)이라는 용어가 생물학적 여성(a biological woman)과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을 지칭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태어날 때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었으나 추후 성확정(성전환)을 거친 트랜스젠더 여성은 평등법상 여성의 범주에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88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평등법은) 성별의 개념이 이분법적이라는 점, 즉 사람은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또한 성별을 GRC에 기재된 성별로 해석하면 “남성과 여성의 정의가 왜곡되며, 성별로서 보호받는 특성이 모순된다”고 봤다. 또한 성별이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지 않게 될 경우 탈의실, 노숙인 숙박시설, 의료 서비스 등 단일 성별 전용 공간을 제공하는 이들이 “실질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이 성확정(성전환)을 거친 트랜스젠더 보호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며 트랜스젠더는 성확정을 이유로 한 차별로부터는 보호된다고 강조했다. 호지 판사는 “이 판결은 우리 사회의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희생 시켜 얻은 승리로 해석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앞서 스코틀랜드 지방의회가 스코틀랜드 내 공적 기구의 이사회에서 여성이 50%를 차지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때 이 법은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에 포함했다. 이어 스코틀랜드 행정 당국도 GRC를 가진 여성이 이 법에 따른 여성에 포함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여성권리단체 ‘스코틀랜드 여성을 위하여(FWS)’가 여성을 재정의하는 것은 의회 권한을 넘어선다며 이 법의 합헌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FWS는 성별 정의를 일반적인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50%의 남성과 여자로 전환(확정)한 인증서를 가진 남성 50%가 법적으로 여성 대표성을 충족시키게 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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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소송을 제기해 스코틀랜드 법원에선 패소했으나, 이날 대법원에서 승리하게 됐다. 판결 후 수전 스미스 FWS 공동대표는 “오늘 판사들은 우리가 항상 믿어왔던 바를 말해줬다. 즉 여성은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보호받고, 성별은 실재하며, 여성을 위해 지정된 서비스와 공간은 여성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은 이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FWS를 지원한 이들 중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 작가 J. K. 롤링이 있다. 롤링은 성확정을 거친 여성의 권리가 생물학적 여성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판결 이후 롤링은 자신의 엑스에 “FWS는 승소를 통해 영국 전역에서 여성과 소녀의 권리를 보호했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판결은 영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병원, 보호소, 스포츠 클럽 등 성별에 따른 분류가 존재하는 공간에서 명확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단일 성별 전용 공간은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보호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는 “이제 우리는 판결과 그 의미를 신중하게 고려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판결이 법을 바꾸는 건 아니지만 평등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앞서 평등법 집행을 감시하는 기구인 평등인권위원회도 GRC를 소지한 트랜스젠더 여성을 법적 여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여성에게 미칠 수 있는 결과를 입법자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트랜스젠더 공동체에서는 대법원이 ‘트랜스젠더 보호’를 명시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우려 섞인 반응이 나왔다. 스코티시트랜스는 소셜미디어에 “당황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트랜스젠더 권리 옹호 단체 트랜스액츄얼은 “이 판결은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대한 반대 외에는 실질적인 목적이 없다. 커져가는 적대감과 가상의 두려움을 악용해 반트랜스젠더 차별을 조장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성소수자 단체 연합은 성명을 내 “힘든 날이다. 오늘 대법원 판결이 미칠 광범위하고 해로운 영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대법원이 트랜스젠더를 차별로부터 보호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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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영국은 성명을 내 “오늘 대법원은 소외된 소수자 집단을 비방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망스러운 판결이다. 영국의 모든 공공 기관은 트랜스젠더를 차별과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하는 조치를 명확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랜스젠더를 보호하기 위해 평등 관련 법률을 긴급히 개정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트랜스젠더 권리 후퇴가 가시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젠더 이데올로기 극단주의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연방정부에 생물학적 진실을 회복하기’라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는 여성과 남성 2가지 성별만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여권을 포함한 공식 문서 성별란에는 “개인의 불변하는 생물학적 분류”인 출생 당시 성별만을 기재하도록 했다. 이어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여성 스포츠 경기에서 트랜스젠더 선수의 퇴장을 명령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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