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사용을 삼가고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옷차림을 피하라.”

일본 정부가 다음달 3일 중국의 제80주년 ‘전승절(항일 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대회)’을 앞두고 중국 내 자국민에게 공지한 내용이다. 중국 정부가 해당 기념일을 맞아 재조명하고 있는 항일 정신이 반일 또는 혐일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일본인 티를 내지 않도록 행동거지를 조심하라”는 취지다.
주중 일본대사관은 지난 27일 홈페이지를 통해 “역사에 관련된 기념일에는 중국 내 반일감정이 특히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며 “외출 시에는 주변 상황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라”고 당부했다. 여기엔 일본어 사용과 일본풍 복장 착용을 자제하는 것 외에 "일본인이 몰리는 시설·상가·식당 등 방문도 가능한 피하라"거나 "일본인을 드러내는 물품을 휴대하지 마라" 등 구체적 행동 수칙이 담겼다. 대사관은 또 "조금이라도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인물이나 집단 등을 보았을 때에는 접근하지 말고, 신속히 그 장소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일본 정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번 전승절을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데는 최근 중국 내 일본인 대상 범죄의 영향 때문이라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지난해 9월 광둥성 선전시에서 발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일본인학교에 등교하던 10살짜리 일본인 초등학생이 중국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져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특히 해당 사건이 일어난 9월 18일은 만주사변이 시작된 상징적인 날로 9월 3일 전승절과 함께 반일 감정이 특히 고조되는 시기로 꼽힌다. 선전시 지방법원은 지난 1월 판결에서 “인터넷에서 주목을 끌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아동을 살해했다”며 이 남성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3개월 만에 형이 집행됐다.
앞서 같은 해 6월 장쑤성 쑤저우시에서는 중국인 남성이 흉기를 들고 일본인학교 스쿨버스를 공격해 일본인 모자가 다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7월 말에도 같은 도시에서 아이를 동반한 일본인 여성이 돌 같은 물체로 맞는 사건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대사관은 이번 공지에서 “아이를 동반한 경우에는 충분히 대비하라”고 특별히 주의를 당부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잇따른 중국 내 반일 범죄 이후 일본계 기업들은 직원들의 일시 귀국을 허용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도 일본인학교 등·하교와 일본계 기업 출·퇴근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 등의 방범을 강화하고 경비원을 배치하는 데 4300만엔(약 4억1000만원)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중국 내 일본 교민 사회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닛케이는 “올해 봄 중국 내 11개 일본인학교의 학생 수가 3226명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80주년 전승절 행사가 지방도시에서도 이어지는 만큼 이번 공지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