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나가자! 만나자! 배우자!

2024-10-13

주말에 지인 아들의 결혼식에 갔다. 그날 몸 상태도 좋지 않았고 예식장도 제법 먼 곳에 있었다. 서로 바빠 꽤 격조한 사이였고 문자와 카톡 청첩장만 받아서 계좌로 축의금만 보낼까란 생각을 했다. 꼭 참석해야 할 이유보다 가지 않아도 될 이유가 더 많았다. 그런데 하늘을 보니 너무 아름답고 흰 구름이 마치 커다란 손처럼 내게 ‘집에만 있지 말고 다녀오라’고 이끄는 것 같았다. 그 지인이 베풀어준 따뜻한 마음도 떠올랐다. 난 구름을 탄 듯 결혼식장으로 갔다.

언덕 위의 야외 결혼식장은 화창한 날씨 덕분에 황홀할 만큼 근사했다. 지인 부부는 두 손을 내밀어 환대했다. 신랑 신부의 수줍은 행복함이 햇살처럼 퍼졌다. 식사도 훌륭해서 디저트로 나온 케이크까지 그릇을 비웠다. 무엇보다 그리워하던 반가운 사람들과의 조우가 내겐 큰 선물이었다. 큰 수술을 받고 회복한 선배, 3개월 전 남편을 하늘로 보낸 친구의 미소를 확인해 기뻤다. 또 내 테이블에는 자원봉사 전문가(?)들이 자리해서 그들의 활동을 소개했고 78세라는 분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과 꼿꼿한 자세를 자랑했는데 매일 운동을 하고 합창반에도 참여한다고 밝혔다. 초면인데도 함께 축하 건배를 했고 맘껏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오그라들었던 내 몸이 펴진 것 같고 눅눅했던 마음도 보송보송해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기꺼이 결혼식장을 향해 나간 덕분이다.

기사를 쓰기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주요 임무였던 기자 시절엔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기대에 못 미치거나, 태도가 불손하거나 혹은 뭔가 음습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기가 빨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해관계나 목적에 치중한 탓이기도 하다. 60세가 되면서 나는 수첩에 ‘나가자! 만나자! 배우자!’라는 구호(!)를 적어뒀다. 그 사람을 만나 나의 이해타산을 따지기 전에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일단 집을 나가서 누구라도 만나면 그 사람으로부터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다. 모든 이들이 나의 스승이고 교과서이자 마음의 공원임을 깨닫는다.

신경건강정신과에서는 우울증이나 치매 초기 증상을 알아보기 위해 “일주일에 몇번 외출하는가”를 묻는다고 한다. 집의 문을 열어야 마음의 문도 열리기 때문이란다. “맨날 자식 자랑만 하는 친구들 만나면 뭐해” “징징대는 사람 만나면 나까지 우울해져” 등 나이가 들면 여러 이유를 대며 만남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건 타인의 단점만 주목해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장점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비아냥거리는 말투나 절대 자기 돈은 안 쓰는 이들의 행동은 반면교사로 삼아 나를 다듬어가면 된다. 내 책의 독자란 한 분은 시골 교회에 커피를 보낸다고 했다. 주로 노인들이 신도인데 교회에 와서 달달한 커피라도 한잔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란다. 세상에 착한 이들이 더 많다는 생각에 지갑을 열어 커피값에 보태라고 전했다. 자주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선한 행동을 배우며 곱게 나이들고 싶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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