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순환적 과정’을 시각적으로 서술
어릴 적 ‘임사 체험’이 작업 동력
영상 ‘8명 행위자’에 우주관 집약
예술가 아닌 깨달음 향한 구도자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둘은 하나의 본질에서 나왔기에 서로 분리된 대립적인 개념과는 결이 다르다. 서로를 정의하고 보완하는 필연적인 관계로 엮여 있어 상호의존적이다. 죽음이 있어 삶의 유한성이 자각되고, 삶의 가치 또한 깨닫는다.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이해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 정신의 성숙을 돕는다”고 한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주장은 삶과 죽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인정이다.
권무형 작가는 삶과 죽음의 관계에 일찍 눈을 떴다. 초등학교 때 이미 존재의 유한성을 자각했고, 죽음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 답지 않는 성숙된 시각 이면에는 사연이 있다. 그가 “음식을 먹고 심하게 체해 식도가 막혔고, 의식을 잃었다”며 죽음 직전의 상황에 놓였던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는 당시 “임사 체험을 했다”고 기억했다.
“체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에서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어요. 그때 제 의식은 의외로 평온했고, 이동하는 동안 하늘 위 구름이 하나씩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것을 보았어요. 병원에서는 영혼이 몸에서 떨어져 나와 허공에서 저를 바라보는 유체이탈도 경험했습니다.”
임사체험 이후 우연인지 필연인지 또 다른 이들의 죽음도 더러 목격했다. 달리는 기차에 뛰어든 누군가의 죽음과 매서운 추위에 길 위에서 동사한 취객의 죽음도 만났다. 죽음을 둘러싼 그의 특별한 경험들은 어렸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갖게 했다. 작업을 시작하고 작업의 주제로까지 연결한 것은 자연스럽다. “죽음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임사 체험으로 어렴풋하게 알고 있지만 죽음 이후에 어떤 차원으로 가는지는 의문인 것 같습니다. 그 궁금증이 제 작업의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삶과 죽음을 일회성으로 끝나는 선형적 과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끊임없이 무한 반복하는 순환적인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의 개인전이 진행 중인 수성아트피아 권무형 초대전에 생멸(生滅)과정과 존재의 순환과정을 시각적으로 서술한 회화, 사진,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전시작인 영상 작품 ‘명상 : 8괘(八卦)’에 그의 순환론적 우주관이 집약돼 있다. 우주의 근본이치와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하는 건곤감리(乾坤坎離)를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 영상이다.
우주의 바다에서 생명이 시작되어 끊임없는 변화를 거쳐 다시 죽음으로 우주의 바다로 돌아가는 반복된 과정을 행위 예술로 표현했다. 생명의 끈을 그의 몸에 두른 8명의 행위자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연기한다.
사진 작품 ‘명상(Meditation)’은 순환론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이다. 그는 1999년 2월 28일 오전 0시에 삭발을 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시기마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과정을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했다. 이번 전시 사진은 그 중 일부다. 그가 “머리카락이 땅에 닿으면 머리카락 퍼포먼스는 끝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그의 머리카락은 땅에 닿진 않고 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다시 자라는 순환의 고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생멸과 윤회를 저의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통해 증명하고 싶었어요.”
회화 작업의 주제 역시 ‘순환론’이다. 회오리 모양으로 원을 만든 작품 ‘명상’ 연작이 회화의 첫 시도였다. 윤회에 대한 형상화인데, 물감에 두께를 주어 반입체 형태를 띤다. 빛이 개입되면 그림자도 생긴다. 또 다른 결의 ‘명상’ 연작에선 흙을 바른 캔버스 표면에 물감을 반복해서 칠했다. 작업 과정에서 중력에 의해 물감은 땅으로 흘러내린다. 이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면 물감의 무게 때문에 덩어리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는 이 순간을 “육체와 정신의 유체이탈”에 비유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물감을 두껍게 바른 캔버스는 육체, 물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캔버스에서 떨어져 나가는 물감덩어리는 정신에 해당됩니다. 물감과 캔버스가 분리되면 주름이 가듯 물감덩어리에 금이 가고, 부서지고, 다시 가루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순환이죠.”
‘명상’ 연작은 ‘aleph 1’ 연작으로의 변주를 시작했다. ‘aleph 1’은 무한의 수를 의미하며, 작가는 무한한 우주의 공간을 은유했다. 작업은 원의 단면 일부를 해체하여 표면을 칠한 캔버스에 오브제 형식으로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전시에는 또 한 번의 변주를 감행해 해체한 조각들을 설치 형식으로 조성했다.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순환의 사이클 속에 있다는 것을 다양한 형식의 작업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인 ‘명상’은 그의 작업이 이르고자 하는 궁극의 경지를 가늠하게 한다. 물감으로 반입체의 원을 그리고 해체하고 오브제로 환골탈태하는 작업 과정이야말로 명상의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이는 궁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방법론이다. 그는 예술가 이전에 깨달음을 향하는 구도자로 인식한다. ‘진리’와 ‘깨달음’을 삶과 예술의 지표로 삼은 결과다. “작업 자체가 ‘명상’입니다. 현실에 있지만, 저 너머의 진리를 향하는 길 속에 ‘명상’이 있습니다.” 전시는 23일까지 수성아트피아 1전시실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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