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해 온 증권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신영증권·부국증권·대신증권이 대상으로 거론되는 가운데 이들 증권사의 자사주 활용처에 관심이 집중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영증권은 자사주 보유 비율이 53.1%에 달한다. 부국증권(42.73%)과 대신증권(25.12%), 미래에셋증권(22.98%)도 자사주 비중이 높은 편이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회사 자금으로 다시 사들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자사주는 유통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특히 자사주 매입 이후 소각까지 이뤄지면 총 주식 수가 줄어 지분율·배당 확대 등 최대한의 주식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하나로 묶여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그러나 높은 자사주 비중의 증권사는 대부분 소각에 인색하다. 이유는 경영권이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신영증권은 1994년부터 자사주 매입을 단행했으나 소각에 나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최대주주 원국희 신영증권 명예회장(10.42%)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23.13%다. 자사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은 총 70%에 달해 원 회장 일가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부국증권과 대신증권도 낮은 오너일가 지분율을 자사주로 보완했다. 부국증권은 최대주주 김중건 회장(12.22%)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33.79%로 자사주와 합치면 약 76%에 달한다. 대신증권은 양홍석 부회장(9.83%)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16.52%다. 자사주와 더하면 대신증권 전체 주식의 절반을 보유한 셈이다. 부국증권과 대신증권 역시 최근 10년간 자사주 소각 사례가 없다.
반면 미래에셋증권은 대신증권과 자사주 지분율이 비슷한 수준이지만 2018년부터 자사주 취득 및 소각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밸류업 공시로 2030년까지 자사주 1억주를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소각 계획의 28%(2750만주)를 태웠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맞춰 미래에셋증권이 소각 카드를 적극 꺼내 들 수 있었던 것은 자사주를 소각하더라도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영·부국·대신증권과 달리 미래에셋증권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캐피탈의 지분율은 31.23%에 달한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미래에셋증권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캐피탈을 통해 간접 지배하고 있다. 미래에셋캐피탈의 박 회장 지분율은 34.32%다.
다만 정부가 기존에 보유 중인 자사주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두기로 하면서 오너 체제 중소형 증권사들은 당분간 강제 소각을 피하게 됐다. 그러나 자사주 활용처에 대한 부담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상장사들이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충분히 부여하고, 자사주 처분 시 신주 발행 절차를 준용해 심사를 거치도록 할 계획이다. 신주처럼 당국 심사를 거치는 규제를 도입해 자사주를 지배주주 이익 편취에 활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권순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처분을 어렵게 하고 자사주 매입이 주주환원으로 명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 변화에 나선 것"이라며 "기보유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보다 이미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소각 예정인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주주환원 기대감 유효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