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이 입동이었다. 입동은 겨울이 시작한다는 의미로 물이 얼기 시작하는 때라는 의미도 있다. 이즈음이면 뱀이나 개구리 같은 파충류나 곰과 같은 포유류 등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속에 굴을 파고 겨울나기에 들어가며,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마른다. 입동 후 5일이 지나면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으며, 다시 10일이 지나면 첫눈이 내리는 소설이다. 옛날 선조들은 입동이 되면 겨울이 시작하는 날로 여겼으며 김장을 하는 등 겨울 채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조금 다르다. 어제 모기 3마리를 잡았고 오늘도 모기를 잡기 위해서 전자모기채와 랜턴을 쥐고 모기잡이에 열중이다. 원래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이 삐뚤어진다’는 속담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8월 중순인 처서는 고사하고 11월인 입동에도 모기와 씨름하고 있다. 이유야 모두가 아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 탓이다. 입동인데도 기온이 낮아지지 않아서 모기가 아직도 극성이다. 사실 올여름에는 모기가 별로 없었다. 너무 더운 탓에 모기 유충도 살기 어려운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더위가 물러나는 가을에 모기가 더 극성일 것이란 뉴스는 들었지만, 입동까지 모기와 씨름할 줄은 몰랐다.
최근 바다 수온이 상승하여 제주에서 양식 중인 광어가 모두 폐사했다. 원래 이맘때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전어가 한창이어야 하는데 아직 맛도 보지 못했다. 수온 상승으로 올해는 전어가 전혀 잡히지 않고 있다. 양식 전복도 폐사가 많아서 식당에서 구경하기 힘들다. 최근에 배추가 한 통에 1만원을 넘기도 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입동에 짜증스러운 모기와 씨름하는 것도 그리 억울한 일만도 아니다. 오늘 아침 뉴스에 최근 몇 주간 기온이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아서 강원도에 진달래가 피었고, 경기도에는 장미꽃이 피었다고 한다.
사실 지구온난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는 이상기후로 평소 강우량의 2배에 달하는 장맛비가 내려 홍수가 났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코코아 쇼크’다. 너무 습해지면서 코코아나무에 치명적인 곰팡이 감염병인 ‘검은 꼬투리병’이 발생해 코코아 수확량이 35%나 감소했다. 전 세계에 초콜릿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초콜릿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초콜릿이 아주 귀한 식품이 될 수도 있다. 코코아 쇼크와 함께 커피 수확량도 감소하는 추세다. 커피 역시 가격이 점점 비싸질 가능성이 높다.
24절기는 2500년 전에 중국 주나라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태양의 위치에 따라 만들어져서 불과 30년 전까지 잘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제 이상기온으로 인해 그 정확도가 낮아지고 있다. 모기만 해도 두 달 이상 차이가 난다. 예전 입동에 모기를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에 사라진 말이 있다. ‘입시한파’다. 과거에 입시 날만 되면 영하 10도 이상으로 추워서 ‘입시한파’란 말이 생겼다. 수능을 앞두고도 최고기온이 20도였다. 수능일엔 17도였다고 한다. 역시 이상고온 탓이다. 요즘 동해바다에서는 수온 상승으로 오징어와 동태를 잡을 수 없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잡히던 갈치가 일본에서 잡힌다. 요즘 유행어인 ‘뉴노멀’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얼마 전 모 장관이 환율이 1,400원이 되는 것은 ‘뉴노멀’이라 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오늘 드디어 1,400원을 넘었다. 얼마 전 ‘뉴노멀’이란 한국영화도 있었지만, ‘뉴노멀’이란 단어가 조금 생경하다. 노멀은 아니지만 노멀화되었으니 감수하라는 의미로 느껴지는 탓이다. 정상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으니 그냥 받아들이라고 들린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촉법소년, 데이트폭력, 마약 등 비상식적인 사건들을 이젠 ‘뉴노멀’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면 심각하다. ‘뉴노멀’이라고 고정하기보다는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희망을 주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의 마음도 사회현상도 ‘회복탄력성’을 지니고 있다. 극단에 이르러 회복탄력성을 잃으면 위험해진다. 지구도 사람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입동에 모기와 씨름하며 ‘뉴노멀’보다 회복탄력성으로 내년엔 기름기 흐르는 전어구이를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