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부 정기 상여금까지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들은 줄소송에 휘말리는 한편 인건비 부담에 임금 인상폭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에 유리한 판결 같았지만 기업들이 인건비 통제에 나서며 궁극적으로는 노사 모두에게 불리해진 셈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0일 이같은 내용의 '통상임금 판결 100일, 기업 영향 및 대응 긴급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건부 상여금이 있는 17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63.5%는 ‘통상임금 충격이 부담돼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다’고 답했다.
주된 어려움으로 대기업은 소송부담, 중소기업은 인건비 증가를 호소했다. 기아(000270) 노동조합은 지난달 사측을 상대로 통상임금 소급분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추가 수당의 기준인 통상 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아, 야근·휴일 수당·퇴직금 등이 낮게 책정돼 ‘체불 임금’이 생겼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19일 선고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하라고 했지만 일단 소송부터 진행하는 노조가 늘며 기업들은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업 대응 방식에 대한 질문(복수응답)에 32.7%는 ‘임금 인상 최소화’를 꼽았고 ‘정기상여금 축소·대체’가 24.5%로 뒤를 이었다. 시간 외 근로 시간 축소(23.9%), 신규 인력 감축 등 인건비 증가 최소화(18.9%) 등을 선택한 기업도 많았다. 한 중소 제조업체는 “명절 상여는 선물로 바꾸고 정기 상여금은 식비나 교통비로 돌리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대응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판결 이후 임금 상승률 예측치 조사에서 5% 이상을 전망한 대기업은 55.3%에 달한 반면 중소기업은 25%에 그쳤다. 2.5%이내라고 응답한 비율은 대기업이 23.1%, 중소기업 43.4%였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글로벌 지형이 바뀌면서 고강도 혁신이 필요한 상황에 중소기업 대표들은 통상임금 컨설팅까지 받는 형국”이라며 “근로조건 결정은 노사 합의 기본 원칙에 근거해 법·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 판단요건인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 중 고정성 요건을 폐지하며 “재직 조건이나 근무 일수 조건이 붙은 정기 상여금 등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