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도 얼굴에 칼 그었다” 신라 왕자가 손 불태운 이유

2025-09-11

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치를 담습니다.

#궁궁통1

신라 성덕왕에게는

‘천관녀(天官女)’라는

막내딸이

있었습니다.

미모가

아주

출중했습니다.

성덕왕은

신라의 귀족 집안에

딸을

시집 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불교에 심취한

공주는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무려

1300년 전입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그녀의 뜻이

관철되기는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공주의 결혼은

왕실과 귀족 집안이

손을 잡는

일종의

정치적 동맹이기도

했으니까요.

결국

천관녀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칼로

자신의 얼굴을

그어버린

겁니다.

얼굴에

큰 흉터가 생겼고,

혼사는

결국

무산됐습니다.

#궁궁통2

공주에게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신라 성덕왕의

셋째 왕자입니다.

출가 수행자가

되고자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낸

누이의 결기를

보고서

왕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냘픈 여인도

절조(節操ㆍ절개와 지조)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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