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관세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지난 14일 열린 중국과 베트남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의 발언에 미묘한 온도 차가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인 상호관세 부과에 반대하며 공동 대응을 강조했지만, 베트남은 중국의 무역역조 시정을 요구하면서 미국과의 분쟁은 언급하지 않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베트남 특유의 ‘대나무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회담에서 “일방적인 괴롭힘에 공동으로 반대하고, 글로벌 자유무역체제와 산업망·공급망의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같은 날 베트남공산당 기관지 인민보는 시 주석의 관련 발언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 람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가 회담에서 “무역의 균형과 투자의 질을 더욱 향상해야 한다”며 양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 해소를 강조했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무역은 대중 적자를 대미 흑자로 해소하는 샌드위치 구조다. 베트남은 지난해 중국과 무역에서 631억 달러(약 89조67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 해관(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베트남은 올해 들어서도 지난 1~2월 두 달간 이미 120억 달러(약 17조원)의 대중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는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45.8% 늘어난 수치다.
반면 베트남은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1235억 달러(약 175조4900억원)의 흑자를 거뒀다. 중국과 무역 적자 폭의 약 2배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를 근거로 지난 2일 베트남에 46%에 이르는 고액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단,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상호관세는 90일간 유예된 상태다.
중국은 이런 베트남에 미국과의 관세전쟁 파트너를 의미하는 ‘항미연대’ 동참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소통 강화와 철도 부설을 당근으로 제시했다. 시 주석의 이번 순방에 이례적으로 왕이 외교부장과 둥쥔 국방부장, 왕샤오훙 공안부장이 동행한 게 대표적이다.
양국은 외교·안보장관 회담인 '2+2' 회담이 아니라 외교·국방·공안 수장 간 ‘3+3’ 전략대화 메커니즘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면서 전략적 협조를 증진하는 데 합의했다. 또 베트남이 취약한 철도 인프라 개선을 위한 정부 간 철로 협력 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양국 국경에서 이어지는 라오카이-하오니-하이퐁 철도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시행한다고도 했다.
실리와 양자 이슈를 중시하는 베트남과 달리 중국은 명분과 다자 협력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작은 배는 홀로 '퍼펙트 스톰'을 헤쳐나가지 못하지만,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건너면 안정되고 더 멀리 갈 수 있다”며 공동 대응을 강조했다. 반면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합의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베트남 현지 매체는 “미해결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데 합의했다”며 “양측은 '동해(중국에선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DOC)' 이행에 대한 아세안·중국 합의를 엄격히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박상수 충북대 교수는 “미국과 관세 협상을 앞둔 베트남이 1년 4개월 만에 하노이를 다시 방문한 시 주석을 환대하면서도 미국을 의식해 신중함을 잊지 않았다”며 “미국과의 원스톱 협상, 시 주석의 방한을 모두 앞두고 있는 한국이 벤치마크해야 할 회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