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한국갤럽의 ‘전직 대통령 공과(功過) 평가’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보다 못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성적이 관심을 모았지만, 더 눈길을 잡아끈 이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이었다. 전직 대통령 11명을 대상으로 ‘대통령으로서 잘한 일이 많은지, 잘못한 일이 많은지’ 물어본 결과, MB는 ‘잘한 일이 많다’ 응답에서 노무현(68%)·박정희(62%)·김대중(60%)·김영삼(42%)에 이은 35%였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는 현재의 정치·유권자 지형을 반영한다. 계엄과 탄핵으로 보수가 궤멸된 뒤 더불어민주당(42%) 지지자가 국민의힘(24%) 지지자를 압도하는 현 토양에선 진보 진영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MB의 선전은 눈에 띈다.
역대 대통령 평가 MB ‘실용’ 두각
‘유연한 실용’ 공언했던 현 정부도
이념 잣대 칼질 말고 약속 지켜야
그는 ‘잘한 일이 많다’는 응답에서 과거 진보 측 팬덤이 강했던 문재인(33%) 전 대통령을 앞섰다. ‘잘했다(공·功)’와 ‘잘못했다(과·過)’의 비율은 35% 대 46%로 같은 보수 계열인 윤석열(12% 대 77%), 전두환(16%대 68%), 박근혜(17% 대 65%), 노태우(18% 대 50%)에 비해 준수했다. 2015년 같은 조사 때 MB는 공과 과의 비율이 12% 대 64%였지만, 2023년 조사에선 32%대 54%로 개선됐고, 이번 조사에선 더 좋아졌다. 그동안 진보 진영에선 MB를 다른 보수 진영 출신 대통령들과 함께 묶어 집중적인 공세에 나섰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그런 시각들과 약간 거리가 있었다. 한국갤럽은 MB에 대해 “긍정론이 늘고 부정론은 줄어 모종의 재평가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우선 재임 시의 성과가 훗날 재조명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외환위기 극복과 녹색성장 드라이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완성,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등이 MB 시대의 대표적 성과들이다. 특히 한국형 원전의 첫 수출 사례였던 400억 달러 규모의 UAE 원전 수주는 중동 지역과의 전략적 협력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했다. 이후 윤 전 대통령도 MB를 발판으로 UAE와 300억 달러 투자 협약을 맺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UAE 방문에서 거뒀다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과 방산 협력 성과의 근간에도 MB 때 쌓인 양국 간 신뢰가 깔려 있음은 불문가지다. MB의 정치적 지향이었던 ‘중도실용주의’가 재평가되는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한다. 정청래와 장동혁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한국 정치는 이성과 합리가 마비된 ‘묻지마 진영 대결’의 실험장이 됐다. 1945년 광복 뒤 해방 공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정치·사회적 반목이 심화되는 시기에 그 발전적 대안으로 MB식 중도 실용이 주목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사실 이 대통령도 기회가 날 때마다 ‘실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지난 6월 취임식의 핵심 키워드 역시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 수많은 미사여구들과 동떨어져 있다.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인 ‘연성 적폐 청산’ 시도도 그런 맥락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내란 관련성을 따진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공직자들에 대한 낙인 찍기와 대청소 대상 리스트 작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른바 ‘비상계엄 관련 주미대사관 공문’ 사건으로 TF 출범의 단초를 제공했던 외교부는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투서가 꼬리를 물면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고 한다. 공관장 인선이 사실상 올스톱된 가운데 베테랑 외교관들 사이에선 “민주당과 인연이 있는 일부를 빼고는 모두가 짐을 쌀 것”이란 소문이 흉흉하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펼치겠다고 전 세계에 홍보해 온 정부가 정작 그 전초 기지인 외교부를 이념의 잣대로 칼질하려 든다면 그 황당한 모순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나. 정부가 진짜 실용 정부냐, 실용호소 정부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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