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자율주행 경쟁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실증'이다

2026-01-05

자율주행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 담론은 오랫동안 기술력과 투자 규모의 비교에 집중됐다. 미국·중국의 거대 기술기업이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른 기술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산업 역사는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기술을 먼저 만든 국가가, 과연 시장까지 먼저 장악하는가. 내연기관 자동차 역사에서도 영국이 발명을 앞섰지만 실제 상용화와 산업화를 이끈 국가는 독일이다. 산업 주도권을 가른 것은 기술의 초기 성취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현실의 도로와 도시에서 실증하고 운영체계를 구축했는가였다. 자율주행 역시 같은 궤도 위에 놓여있다.

최근 국토부 자율주행 실증도시 사업을 둘러싸고 “아직 기술 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실증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율주행은 연구소와 시험장에서만 다뤄지는 기술이 아니라 도시라는 살아 있는 공간 속에서 교통환경·행정체계·안전규제·시민 수용성까지 함께 다뤄야 하는 운영 산업이다. 따라서 한국이 직면한 경쟁은 기술 세대차이를 비교하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도시에서 더 빠르게 더 넓게 실증·운영 경험을 축적하느냐의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사례를 기술 선도국이라는 인식만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도시 단위 실증의 범위와 확산 수준이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자율주행이 대표적으로 운영되는 지역은 샌프란시스코와 베이 에어리어·로스앤젤레스 일부 구역·애리조나 피닉스·텍사스 오스틴 등 제한된 도시권에 집중됐다. 이들 서비스 중 상당수는 웨이모가 중심으로 정해진 서비스 존과 제한된 시간대 내에서 운영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무엇보다 면적을 기준으로 보면 세계 1위 사업자로 평가받는 웨이모도 현재 운영 중인 서비스존의 총면적이 186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미국 전체 국토 약 983만㎢ 대비 0.0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미국의 자율주행 역시 여전히 일부 도시 중심의 제한적 확산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은 전혀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국토 면적이 약 10만㎢ 내외로 크지 않음에도 전국 17개 시·도 42개 시군구에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가 지정돼 자율주행 실증과 서비스 운영이 분산·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체계적 분산 실증 기반은 단일 도시 중심의 실증과 달리 국가 전체의 실증 데이터와 운영 경험을 함께 축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작은 국토는 제약이 아니라 도시간 연계와 전국 확산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집약형 학습 구조라는 점에서 오히려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기반 위에서 새해 자율주행 실증도시 사업의 첫 도시인 광주에서 추진되는 200대 규모 자율주행 실증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기술과 자율주행 기술이 지역 단위에서 국가 단위로 확산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광주에서 축적되는 운영 데이터·안전 검증·시민 체감 서비스·공공교통 연계 경험은 이후 다른 도시로 확산되며 한국형 레퍼런스 모델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성과가 안정적으로 축적되면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1000대 자율주행 실증도시 구축 계획 역시 현장에서 실체를 갖춘 정책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광주는 종착지가 아니라 전국 확산과 산업화·해외 협력으로 이어지는 'K자율주행의 전략적 출발점'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자율주행 상용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전환의 시기다. 2026년은 단순한 실증 사업의 연장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해온 기술과 운영 경험을 도시 서비스와 산업 생태계로 실질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시점이 될 수 있다. 실증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해 왔다면 이제 그 경험을 기반으로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갖춘 운영 모델을 차근차근 정립해 나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도시·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꾸준히 축적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흐름은 단지 산업의 성과를 넘어 혁신·산업·국가전략을 함께 묶어 내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광주 실증이 전국 확산과 산업화로 연결될 때 한국은 AI 3대 강국이라는 국가 전략과 자율주행 분야의 '글로벌 톱10' 진입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기술과 운영, 정책과 산업이 하나의 방향으로 결집할 때 한국 자율주행은 세계 시장에서 명확한 존재감을 가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 산업의 경쟁은 더 이상 알고리즘의 정교함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앞으로 승부는 누가 더 많은 도시에서 더 빠르게 더 넓게 실증하고 운영 경험을 축적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광주에서 시작되는 실증이 그 전환을 이끄는 출발점이 되고 한국 자율주행 산업이 상용화와 글로벌 확산의 단계로 힘 있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hjh@autoa2z.co.kr

〈필자〉한양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차 연구소에 입사했다. 현대차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초 주·야간 자율주행, 서울·평창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후 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를 창업해 5년 만에 국내 1위, 세계 13위 독보적 성과를 창출했다. 현재 4차산업혁명위원회,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도 모빌리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모빌리티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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