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국가 안보에 필수인 핵심 광물과 제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공급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월가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13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안보는 강하고 회복력 있는 국내 경제에 기반을 둬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JP모건이 희토류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배터리 등 국가전략산업에 향후 10년간 1조 5000억 달러(약 2144조 7000억 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 계획을 내놓은 배경에 중국의 거센 추격을 막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는 점을 설파한 셈이다.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중국 견제에 미국 정부뿐 아니라 금융권도 가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다이먼 회장은 WSJ 기고문에서 “우리의 적대국들은 기다리지 않는다”며 “미국은 (산업에 대한) 투자 속도를 크게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서 중국은 그간 갈고 닦아온 힘을 바탕으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희토류 분리·정제 등 가공 분야에서 전 세계 공급량의 90% 이상을 손에 쥔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희토류를 ‘무기’로 삼고 있다. 중국이 최근 희토류에 대한 추가 수출통제 조치를 내놓은 것도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협상술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화웨이와 알리바바·딥시크 등 중국의 AI 기업들은 공산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미국의 빅테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달 20일부터 열리는 제20기 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중국 공산당은 AI와 양자컴퓨팅, 생명공학·우주항공 등 첨단산업에 대한 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의 생존이 걸린 ‘기술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간기업인 JP모건이 미국 정부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아메리카 퍼스트 투자’를 전격 발표한 배경이기도 하다. JP모건이 발표한 ‘안보 및 회복력 이니셔티브’는 10년 동안 1조 5000억 달러가 투입되는 대형 투자 계획이다. JP모건은 이 계획의 일환으로 자신들이 선별한 기업에 최대 100억 달러(약 14조 3110억 원) 규모의 직접 지분투자 및 벤처캐피털 투자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투자 대상은 △핵심 광물과 로봇 공학을 포함한 공급망 및 첨단 제조 △방위 기술, 자율주행 등 국방·우주 △배터리·전력망 포함 에너지 독립 분야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 등 4대 핵심 부문으로 삼았다.
월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다이먼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다양한 현안에서 이견을 표출하며 껄끄러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금리 인하를 거세게 압박하자 다이먼 회장은 ‘연준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공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첨예한 미중 무역전쟁을 겪으며 중국의 예봉을 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다이먼 회장이 올 8월 서로 대립해온 지 수년 만에 비공개 회동을 갖고 각종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이먼 회장이 “정부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JP모건이 세운 목표가 핵심 인프라와 기술을 미국에 두겠다는 백악관의 정책 의제에 부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WSJ는 JP모건이 이미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안보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평가한 기업들에 대한 정부 투자에 관여해왔다고 보도했다. 단적인 예로 JP모건은 7월 골드만삭스와 함께 미국 최대 희토류 생산 업체인 MP머티리얼스에 10억 달러를 대출하기로 했다. WSJ는 이 같은 자금 지원이 미 국방부가 MP머티리얼스의 최대주주가 된 것과 연계해 이뤄졌다면서 애플, 제너럴모터스(GM) 같은 기업에 희토류 자석을 공급하기 위한 신규 공장 건설에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