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사진과 시가 조응하여

2024-11-22

‘나무가 남동쪽으로 누운 채 자라는 이유를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날의 눈보라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 ‘남동으로 눕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정을 걷다가, 북서풍에 몸을 맡긴 나무를 보았다. 뿌리박힌 나무가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남동쪽으로 눕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산정까지 따라 올라온 절집 개까지 더해져 초현실적인 풍경을 이룬 사진 곁에, 나란히 시를 두었다.

김동진은 시인이자 사진가이기 이전에 산을 즐겨 다니는 산행자(山行者)다. 정상을 정복하려 하기 보다는 이산 저산 산의 여기저기를 산책하듯 다닌다는 점에서 산악인보다 이 수식이 더 어울린다. 산행은 어느 날 산책 삼아 오른 인왕산에서의 감응에서 시작되었고, 그 후로 오랜 동안 도심의 일상과 산의 등고선 사이를 오고 갔다.

주로 혼자서 다녔다. 새벽에도 오르고 밤에도 오르고, 비가 오거나 눈이 쌓여도 올랐다.

그에게 산행은 눈보라를 만나는 일이고, 눈보라를 통해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일이었다. 그 숱한 만남들을 기억으로만 흘려보낼 수가 없어서 풍경을 사진 찍고, 순간순간의 사유를 시로 썼다.

몰아치는 눈보라에 누운 채 자라는 나무가 ‘남동으로 눕다’가 되었듯이, 흰 구름을 배경으로 선명한 날개깃을 드러내며 비상하는 새 ‘날아오름’, 눈 덮인 모래사장 위에 찍힌 바다를 향해 난 발자국 ‘그리움 따라’, 검은 산 능선 위로 별들이 가득 흩뿌려져 있는 밤하늘 ‘달달 허다’의 풍경들은 ‘김동진의 사진’이 되었다.

나무를 떠난 꽃잎이 연못을 떠돌다 다시 꽃으로 피는 것을 보았다 ‘다시 핀’, 검은 하늘이 어느 순간 시퍼레지는 새벽도 만났다 ‘불쑥’, 걷다 보면 벼랑 끝에 설 때가 있었고 고개 들어 멀리 보면 지나온 길이 산그리메로 아름다웠다 ‘걸어가는 길’은 ‘김동진의 시’가 되었다.

김동진의 사진 시리즈 ‘천 개의 마음’은, 그렇게 10년 동안의 산행에서 얻은 사진과 시가 서로 조응하는 독특한 작업이다. 시각 언어와 시어가 합심해 우리를 감성의 공간으로 이끈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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