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활쏘기라는 요행

2025-10-28

<한비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어둠 속에서 화살을 마구 쏘다 보면 과녁에도 적중된다. 머리카락같이 아주 가는 털을 맞힐 때도 있다. 그런데 불을 켠 다음 다시 맞혀보라고 하면 못 맞힌다. 과녁을 맞힌 것은 요행이지 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과녁을 맞히는 방법이 또 있다. <여씨춘추>에 나온다. 과녁을 향해 1만명이 일제히 쏘면 정중앙에 적중하는 화살이 틀림없이 생긴다. 이 또한 실력이 아니라 요행이다. 정중앙에 맞힌 자더러 다시 정곡을 맞혀보라고 하면 못 맞힐 가능성이 십중팔구는 넘을 것이기에 그렇다.

요행의 한계는 분명하다. 어쩌다 정곡을 찌를 수는 있지만 반복해 찌르라고 하면 못 찌른다. 요행히 잡은 기회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곡을 찌른 효과조차 말짱 헛것이 된다. 꼭 활쏘기에만 해당하는 이치가 아니다. 요즘 국정감사에서 종종 목도되는 ‘묻지마’식 문제 제기도 마찬가지다. 과녁을 제대로 맞혔다 싶었다가도 대부분 헛발질이 잇따른다. 어둠 속에서 화살을 마구 쏴대는 형국이다.

국정감사뿐만이 아니다. 평소에도, 특히 선거철에는 되는 대로 하나 걸려들어라 하는 마구잡이식 폭로와 의혹 제기가 판을 친다. 치밀한 준비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정곡을 정확히 맞히고 또 파헤침으로써 병폐를 해소해가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흡사 다수의 국회의원이 모여 상대를 망하게 하려는 한 목적으로 화살을 마구 쏴대는 양상이다. 치밀한 준비가 뒷받침된 실력이 아니라 일단 쏘고 보자는 요행에 기댄 작태다.

<여씨춘추>의 필자는 1만명이 모여 “생명 하나를 해치려 한다면 어떤 생명인들 해치지 못할 리 없겠지만, 도움을 주려 한다면 어떤 생명인들 잘 자라지 않을 리 없을 것”이라면서, 많은 인원이 모여 기껏 한다는 것이 마구잡이식 활쏘기인 것을 통탄해했다.

‘K정치’라 운위되며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민 혈세로 먹고사는 정치인이 요행 따위에나 기대는 병폐를 두고 볼 수도 없다. 답 없는 정치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유권자인 시민마저 “정치만 3류다”라는 평가가 자화상이 되어서는 창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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