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내 소문을 제보받아 회사 측이 조사하면서, 당사자의 소명을 거치지 않고 부당한 인사 조치를 한 것이 인사팀장의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노무법인 판단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주요 대형병원에서 벌어진 일인데, 피해 당사자들은 스트레스로 퇴사하거나, 계약 만료를 통보받았다.
4일 취재를 종합하면, 이 병원이 위탁 운영하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 내 부속의원에서 일하던 선임파트장 A씨와 계약직 임상병리사 B씨는 지난해 11월 동료들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은 뒤부터 부적절한 관계라는 허위 소문에 휩싸였다. A씨가 B씨에게 부당한 편익을 제공했다는 제보도 병원에 접수됐다. 병원 인사팀은 그해 12월부터 소문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제보자들의 진술만 듣고 A씨와 B씨에게 사실 확인이나 소명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소문을 사실로 판단했다. 인사팀장이 A씨를 면담한 사실은 있지만 사실 확인보다 소문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성격의 만남에 가까웠다.
인사팀은 지난해 말 A씨를 수원 마케팅팀 평사원으로 발령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A씨는 지난 1월31일 퇴사했다. 회사에 남은 B씨도 정신과 치료 등을 받기 위해 한 달가량 휴직했다. A씨가 지난 4월1일 천안고용노동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진정서를 낸 뒤 병원은 조사를 시작했다.
노무법인은 인사팀장이 소문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이후 A씨와 B씨에게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6월 조사 보고서에는 “피신고인(인사팀장)은 목격자와 제보자 3인의 진술로 신고인에 대한 인사 검증 결과를 확정하고 인사 조치를 결정했다”며 “신고인에게 사실 확인을 하거나 별도의 소명 기회도 부여하지 않고 제보 사실을 모두 확정한 것은 피신고인의 권한을 이용해 신고인의 변론권과 방어권을 무력화한 것으로 신고인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볼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다만 인사 발령에 대해 “징계성 인사 조치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노무법인은 “해당 인사발령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사발령의 경영상 필요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근로자의 손해를 비교해야 하며 이러한 판단은 노동위원회 혹은 법원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병원은 지난달 천안지청으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 인정 행위자에 대해 징계 조치하라는 공문을 받고 최근 인사팀장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다. 병원 측은 인사위원회를 열기 전 A씨와 B씨에게 징계 수위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나, 징계 결과는 징계 당사자에게만 통보했다.
가해자 징계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놓여 있다. A씨는 서면 인터뷰에서 “퇴사 이후 전기·건설공사 현장 일용직을 거쳐 지금은 생산직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했다. B씨는 지난달 8일 ‘근로계약 종료 안내서’를 e메일로 통보받았다.
B씨가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임상병리업계가 좁다 보니 이직하려 해도 허위 소문에 대해 B씨가 일일이 해명해야 할 상황이다. B씨는 “피해자는 정신적·신체적으로 무너졌는데 사측은 ‘징계했다’고 통보만 하고 사건을 종결하면 끝인가”라고 했다.
천안지청은 현재 병원이 내린 결론이 합당한지 판단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노동청 조사 중이라 노동청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며 “결과에 따라 절차대로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