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이 마음을 더 불안하게 한다?…심리학이 밝힌 반전

2025-12-07

정리정돈을 하면 마음까지 가벼워진다는 믿음은 오랫동안 상식처럼 자리 잡아 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집안을 정리하거나 물건을 재배치하며 불안을 가라앉히려는 이들도 많다. 환경심리·정신건강 연구에서는 정돈된 공간이 일시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보고된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정리정돈이 항상 불안을 낮추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정리정돈이 오히려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가 안 되면 불안하다’는 감정이 반복되는 순간부터 정리 행동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불안을 피하려는 자동적 반응처럼 굳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국내 의료기관의 정신건강 질환 정보에서도 이런 경향은 확인된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질환백과는 강박장애의 대표적 행동으로 ‘딱 알맞다고 느껴질 때까지 반복되는 정리·배열·대칭 행동’을 명시한다. 이 행동은 불안을 잠시 낮추기 위해 반복되지만, 일상생활을 해치거나 행동을 하지 못할 때 극심한 불안을 유발할 수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안내한다. 전문가들은 이 지점을 두고 “정리정돈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불안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전문가 상담 현장에서도 유사한 사례는 꾸준히 보고된다. 정리 기준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대칭이 맞지 않으면 조급해지는 감정은 일상 속에서도 흔히 언급된다. ‘정리를 못 하면 찝찝하다’는 감정이 단순한 성향을 넘어 수면과 집중, 일과 관계 전반에 영향을 줄 정도로 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정리정돈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수단이어야 할 뿐, 마음의 불안을 조절하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정리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질수록 기준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가 늘고, 조금만 흐트러져도 불안이 커지는 악순환이 더욱 공고해진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리정돈이 완벽할수록 오히려 마음이 더 긴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돈된 공간이 주는 안정감과 별개로, 완벽한 기준을 스스로에게 적용할수록 작은 흐트러짐에도 예민해지고 불안이 증가하는 패턴이 나타나기 쉽다. 이는 심리적 완벽주의와도 연결되며, 기준이 높아질수록 이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소모가 커지고 기준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불편감도 더욱 증폭된다.

이와 관련해 해외 연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실험적으로 관찰됐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Kathleen D. Vohs 연구팀은 정돈된 방과 어질러진 방 두 환경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정돈된 환경에서는 참가자들이 규범적·전통적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였고, 어질러진 환경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 제시나 창의적 선택이 더 활발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무질서를 장려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완벽한 정돈이 항상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적당한 어질러짐이 오히려 심리적·인지적 여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내 정신건강 전문의들도 이러한 양상을 인정한다. 정리 기준이 높아질수록 스스로 부과한 기준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가 필요해지고,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을 때의 불안감이 커져 결국 일상 전반에 긴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리 습관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조절하려는 강박적 행동 패턴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결국 핵심은 정리정돈의 ‘수준’이다. 정리는 분명 필요한 행동이지만,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져 ‘정리가 안 되면 불안하다’는 감정이 반복된다면 이는 정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 조절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완벽함을 목표로 하기보다 일상에서 무리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충분히 괜찮은 기준(good enough)’을 허용하는 것이 마음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끊임없이 정리하고 다시 정리하려는 마음이 들 때 중요한 것은 ‘정리가 잘 되었는가’가 아니라 ‘정리가 안 되면 왜 불안한가’라는 질문이다. 하루 미뤄 둔 정리나 책상의 약간의 어질러짐이 우리의 심리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과도한 기준에서 해방시키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게 할 수 있다. 정리정돈은 어디까지나 삶을 편하게 만드는 수단이지, 불안을 통제하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완벽함을 조금 내려놓는 순간,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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