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전북대 교수 “공항의 구조적 문제”
“정부는 우왕좌왕하지 말고, 오랫동안 대량(대형) 참사에 대응해 온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대량참사팀의 조언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30년 넘게 시신 4000여구를 부검한 이호(58) 전북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무안공항 제주항공 착륙 사고에 대해 한 말이다. 지난 29일 발생한 이번 사고로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하고, 승무원 2명만이 살아남았다. 이 교수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비롯해 TvN ‘유퀴즈’와 ‘알쓸인잡’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법의학자다.
이 교수는 최근에 펴낸 책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참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 교수는 3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민간 항공기가 추락했지만, 이번 사고의 본질은 공항의 구조적 문제”라고 단언했다. 정부와 공항 책임이 항공사보다 더 크다는 의미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희생자 유족 서운함 없도록 대응해야”
-법의학자로서 무안공항 사고를 보는 심경은 어떤가.
“유족도, 정부 관계자도 처음 겪는 일이다. 정부는 (계속) 있었지만, 사람이 바뀌었다. 대량(대형) 참사가 터지면 오랫동안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온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대량참사팀의 조언을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대량참사팀엔) 국과수 법의관뿐 아니라 각 대학에 있는 법의학자·해부학자 등이 가 있다. 대개 사고가 발생하면 우왕좌왕한다. 관계 부처들은 융합이 안 되고 서로 (책임을) 미룬다. 국과수 대량참사팀이 노하우가 있으니 그쪽 의견을 듣고 (시신 확인 등) 일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들이 서운함이 없도록 대응해야 한다. 당장은 트라우마나 심리 치료가 시급한 건 아니다. 단계마다 어떻게 가겠다는 매뉴얼이 중요하다.”
-사고 원인이 잠정적으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사인이 명확한 사고 희생자에 대해서도 부검이 필요한가.
“부검이 아니고 신원 확인 작업을 하는 거다. 폭발과 화재가 났잖나. 시신을 알아볼 수 있으면 좋은데, 탄화(炭化)됐다. 사망한 뒤 불길에 의해 훼손됐기 때문에 육안으로 시신을 확인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는 가족 DNA(유전자)를 채취해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과 가족 여부를 확인해야 인도할 수 있다. 한 사람으로서 그게 누군지 과학적 근거가 나와야 하는데, 그 작업을 하는 거다.”
“정부는 모든 리스크 고려해 플랜B 세워야”
-여객기 사고 희생자를 부검한 적 있나.
"김해 사고 때 참여했다.(※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4월 베이징에서 출발해 한국 부산 김해공항을 향하던 중국국제항공 CA129편이 착륙 직전 추락하면서 128명 전원이 사망했다) 그때는 산에서 (사고기가) 발견되다 보니 군인·경찰도 가고 시민도 (현장에) 가서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따로따로 안치된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DNA 검사가 옛날처럼 오래 걸리지 않는 데다 탑승자 명단이 있고 (희생자 중) 불특정 다수가 있는 건 아니어서 분리된 시신만 없다면 신원 확인 작업 속도는 빠를 거다. 다만 유족이 있어야 신원이 확인되는데, 가족 단위 희생자가 많아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대개 합동분향소가 꾸려지고 유가족 대표가 정해진 뒤 (수습 방안 등) 전체 합의가 이뤄지고 마지막 희생자 신원이 나올 때까지 개별적으로 시신 인도를 하지 않는다.”
-이번 사고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사고가 터지면 사고를 낸 주체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로와 신호등을 지키는 이유는 국가가 만든 이것만 지키면 안전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어서다. 민간 항공기가 추락했지만, 이번 사고의 본질은 공항의 구조적 문제다. 국토교통부나 공항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설사 (여객기) 랜딩 기어가 안 나오거나 기체 결함이 있더라도 그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계산해 플랜 B를 세워야 하는 게 정부다. 그래서 이번 사고는 ‘제주항공 참사’가 아니라 ‘무안공항 참사’로 불러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와 새만금 잼버리 사태를 보면 항상 통합된 하나의 컨트롤 타워가 없어서 문제가 생겼다. 이번에도 국토교통부·항공사·지자체·보험사 등이 서로 ‘누구 책임이다’라고 싸울까 염려된다.”
“휴머니즘 갖고 섬세히 접근”
-유족에겐 지금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이럴 때는 감히 어떤 말도 못 한다. 다들 상황이 다르고, 하루 지나고, 이틀 지나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그다음에 분노가 끓는다. (정부가) 최대한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솔직하게 임하는 것만이 희생자 유족의 분노를 낮출 수 있다. 이번 사고는 가족 단위로 많이 갔기 때문에 법률적 유족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유족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 법률적으로 따질 게 아니라 희생자의 대표가 되는 가족을 모시고 종합상황실에서 (사고 수습 관련해) 끊임없이, 정해진 시간에 브리핑해야 한다. 불상사는 돌아가신 분한테 발생한 게 아니고 그들을 픽업하러 (공항에) 나갔던, 또 미래를 약속했던 살아 있는 사람한테 발생한 거다. 사고가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발생했다는 공감과 휴머니즘을 갖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언론에 대한 지적도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대개 안타까운 사연을 단발적·파편적으로 다루는 것 같다. 외려 지금은 진행되는 상황을 드라이(담백)하게 체크하고 정부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면밀히 지켜본 다음 과거 발생한 대량 참사 사례를 참고해 나중에 (이번 무안공항 사고에 대해)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고, 유족은 무엇에 실망하고 분노했는지 등을 폭넓게 바라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