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벨문학상 이끈 ‘번역의 힘’, 국가 차원의 지원 늘려야

2024-10-14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국가적 쾌거다. 노벨상 위원회는 육체와 영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과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이번 수상은 단순히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호기이다. 뛰어난 작품성과 그의 문학적 역량이 수상으로 이어졌지만, 한글을 세계인의 언어로 풀어쓴 번역의 힘도 간과할 수 없다. K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묵묵히 애쓴 한국문학번역원(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같은 기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한 작가에게 영국의 데버라 스미스와 프랑스의 피에르 비지우 같은 유능한 번역가들이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스미스는 2016년 한 작가에게 맨부커상을 안긴 ‘채식주의자’를 번역했다. 다양한 한국 문학을 접하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한 그는 김보라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고 한다. 영어가 지배적 위치를 점유한 글로벌 출판시장에서 영어권 독자는 외국 문학에 인색하기 마련이다. 미국 출판시장에서 번역서 비중은 3% 남짓에 불과하다. 번역가는 작가의 ‘동반자’로 불린다. 맨부커상이 작가는 물론 번역가에게도 상을 주는 이유다.

한 작가의 작품 6개의 번역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번역원에서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 교수·수료생이 맡았다. 국내에서 번역 지원을 하는 공공기관은 번역원뿐이다. 민간에서는 대산문화재단(교보생명)이 고작이다. 1996년 설립된 번역원은 지금까지 44개 언어권에서 2171건 출간을 지원해 왔다. 지난해 세계에서 출판된 한국 문학 작품이 200종을 넘었고, 세계적 작가의 기준이라는 ‘2만 달러 이상 인세’를 받는 한국 작가가 등장한 것도 번역의 힘이 크다.

원작과 번역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를 최소화하는 게 번역의 역할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번역의 저변은 열악하다. 번역원 지원 예산은 연간 20억원이 고작이다. 직원 평균 연봉도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 31곳 평균의 77%로 최하위에 그치고 있다. 무엇보다 번역 인력 양성 예산이 매년 줄어 문제다. 최근 외국어에 능한 한국인 번역자 중심에서 한국어와 토착어, 해당국 문화를 잘 아는 원어민 중심의 번역으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 이들을 위한 번역원의 번역아카데미는 학위를 주지 않아 저변 확대에 한계가 있다. 번역대학원대학교 설립 법안의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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